민족의학 '한의학' 과학화 표준화 이끈다

신 성장동력의 산실 대덕밸리를 가다 (17)한국한의학연구원 국가 한의학 연구개발의 허브,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전경 모습

한의학은 수 천 년 동안 우리민족과 궤를 함께 해온 순수 토종의학이다. 민족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한의학은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향약집성방을 이룩하며 틀이 잡혔다. 이후 조선시대 대표의학자 허준이 ‘동의보감’을 통해 한의학이론을 집대성하고, 조선말기의 한의사 이제마는 ‘사상체질의학’이란 한국인만의 독자의학을 뿌리내리게 했다. 이렇듯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전통의학의 효능이 입증돼 왔지만 일부에선 여전히 전통의학의 의학적 효과를 제대로 믿지 않으려는 흐름도 있다. 때문에 우리 전통의학의 당면과제는 객관화, 표준화를 통해 효과와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데로 모인다. ◇국가 한의학 연구개발의 중심 축=한국한의학연구원(한의학연)은 우리나라 전통의학을 체계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1994년 10월 세워진 정부출연 핵심 거점연구기관이다. 한의학연은 한의학 기반의 원천기술연구는 물론 과학화와 표준화를 바탕으로 기초이론 및 임상연구, 한약품질검사, 정책연구 등을 하고 있다. 1997년 한국한의학연구원으로 승격 개원한 데 이어 2004년엔 대전 유성구 전민동 지금의 청사로 옮겼다. 200여 명이 4개의 연구부서와 12개 연구센터에서 연구 활동에 매진하며 우리 전통의학을 키워가고 있다.

한의학연구원이 개발한 지능형 맥진기로 진맥을 짚고 있다.

◇한의학에 과학을 입히다=한의학이 보다 대중화된 서양의학을 넘어 치료의학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려면 ‘과학화·표준화’가 뒤따라야 한다. 한의학연 연구 활동의 모든 중심에 ‘과학화·표준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이유다. ‘중풍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중풍은 한방치료에서 70% 이상을 차지하는 분야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문헌·계통별로 차이가 있었던 중풍진단기준을 모아 공통분모를 찾고 이들의 생물학적 근거와 우리나라 사람의 중풍관련 유전적 요인을 발굴, 전통의학의 과학적 기반을 만드는 게 목표다. 특히 이 연구에선 보고·듣고·맡고·묻고·맥을 짚는 한의학의 핵심기술인 변증진단을 표준화해 서양의학보다 종합적이며 근원적인 진단을 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모두 믿고 누릴 수 있는 ‘침 치료’를 위한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침의 효과는 잘 알려져 있지만 ‘침이 어떤 원리로 통증을 없애고 병을 낫게 하는가’는 아직 정확치 않다. 에너지순환계인 ‘경락’과 ‘경혈’을 자극, 생체기능을 조정하고 치료하는 침의 작용기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서다. 한의학연구원은 다양한 기초과학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벌이고 자체 연구회도 만들어 ‘성과’를 노리고 있다. 새 침구치료법을 개발하고 임상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침구치료를 ‘근거중심의학’으로 재탄생시킬 목표를 갖고 있는 것이다. 또 경락·경혈 진단시스템을 개발하고 침구 경락 국제공동연구에도 나선다. 한의학이 쓰는 25개 대표처방의 기전을 설명하는 이른바 ‘복약지도’를 만드는 것도 한의학연구원의 주요 과제다. ‘표준한방처방 EBM 구축사업’으로 불리는 이 사업은 쌍화탕·육미지황탕·십전대표탕 등 처방빈도가 높고 한방에서 기본이 되는 처방 25가지를 ‘표준한방처방’으로 선정해 이에 대한 처방분석, 표준화 하는 등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한약재연구는 식약청, 대학 등을 통해서도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처방차원의 효능·안전성 검증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실제 의료현장에서 쓰이는 한약처방의 신뢰도를 높이는 게 한의학계의 과제였다. ◇전통의학을 현대로 복원하라=사상의학은 환자를 태양·소양·태음·소음 등 4가지 체질로 나누고 그에 맞게 의술을 펼치는 우리 고유의 의학이다. 한의학연은 이 사상체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객관적으로 체질을 감별하고 그에 따른 예방과 치료법을 연구 과제로 삼아 풀어가고 있다. 이른바 ‘이제마 프로젝트’다. 한의학연은 이를 통해 사람의 체질적 약점을 보완키 위해 ‘예방-경고-치료’에 이르는 3단계 건강관리시스템을 만들고 IT(정보기술)와의 융합을 통해 ▲체질진단칩 ▲체질질병수준 모니터링시스템 ▲체질맞춤신약 등을 개발하고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을 통해 한의학의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기 위한 노력도 펼치고 있다. 동의보감이 세상에 나온 것은 1613년의 일로 400년 전에 발간된 의학도서가 지금까지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건 기적과 같은 일이다. 한의학연구원은 2013년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를 기념해 한의학의 학술적·문화적 성과를 나라 안팎에 알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의학 학문분야 발전과 한방산업 부흥의 디딤돌을 놓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부지원 뒤따라야=사실 우리의 한의학은 중의학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한의학이 중국에서 건너온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한의약 연구개발투자비는 10년간 5400억원, 한해 540억원 수준으로 중국 등 다른 나라들보다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의학연구원 역시 출범 14년째를 맞아서야 300억원대로 올라선 정도다. 설립초기엔 사실상 이름만 ‘한국한의학연구원’에 머물러야 했다. 연구공간이 좁아 이제야 새 청사를 지었다. 우리의 전통한의학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전통의학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한의학연구원이 쌓아온 연구개발 노하우와 능력은 상당하다. IT와 BT(생명기술), NT(나노기술) 등 다양한 기술간 융?복합으로 새 한의학 치료기술패러다임을 갖춰갈 수 있는 이유다. 김기옥 한국한의학연구원장(55)은 “우리 연구원은 한의약 신약분야와 한의학 기반의 U헬스케어, 맞춤형치료제 개발 등 미래 보건의료기술을 확보해 ‘인류건강 100세’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노형일 기자 gogonhi@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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