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우의 경제레터] We Are One

1930년 미국 남부에서 무리를 이룬 백인들이 공동체 의식을 집행했습니다. 정장을 차려입고 나선 사람들 속에는 어린이들도 보였고 가족도 있었습니다. 그날의 행사는 흑인 토머스 십과 에이브러햄 스미스를 집단구타하고 목매달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찍은 사진 중 한 장이 유대계 백인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루이스 알렌(작곡가 겸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시를 쓰고 곡을 붙였습니다. 그 곡이 유명한 ‘이상한 과일’이라는 노래인데 열 살 무렵부터 몸을 팔아야했던 비운의 여성 싱어 빌리 헐리데이가 부르기 시작해 지금은 흑인 여성 싱어라면 반드시 불어야 하는 명곡이 됐습니다. 남쪽에 있는 나무에는 이상한 과일이 열렸네잎새에 묻은 피와 뿌리에 붙어 있는 피검은 육체가 남풍을 받고 흔들리네이상한 과일이 포플라 나무에 열렸네 1937년, 최초의 블루스 여왕 베시 스미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흑인 가수를 받아주는 병원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여러 군데 병원을 전전하던 그녀는 결국 과다출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63년 8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dream)”는 연설을 통해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한달로 채 안되어 남부 앨라배마의 침례교회에서 백인들이 설치한 폭발물이 터져 열 살 흑인 소녀 네 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재즈 연주자 존 콜트레인은 그 슬픔과 충격을 색소폰 연주로 표현했는데 그 곡이 ‘앨라배마’라는 곡입니다. 1965년 ‘흑인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여성 싱어 니나 사이먼은 뉴욕의 한 녹음실에서 ‘네 명의 여인’이란 곡을 녹음했습니다. 노래 속 한 여인이 말합니다. “내 등은 강해, 어떠한 백인의 채찍도 견뎌 낼 수 있어” 또 다른 한 여인이 말합니다. “나의 어머님은 창녀였지. 백인 손님이 우리 어머니를 샀어. 그리고 내가 태어났지…” 이 노래는 이렇게 네 명의 여인이 흑인으로 태어난 아픔을 말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상은 음악 평론가 김진묵씨 기고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미국 음악계에서 벌어진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오랜 옛날 얘기가 아닙니다. 모두 한 세기 내에 벌어진 사건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18일 열렸던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축하무대에는 흑인 스타가 총 출동했습니다. 비욘세, 스티비 원더, 허비 행콕 등이 축하무대의 캐치프레이즈인 ‘We Are One’을 외쳤습니다. 불과 30년 선배였던 니나 사이먼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과다출혈로 죽었는데 지금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대통령 취임식 축하무대를 장식하게 된 것입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내일(20일)은 미국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는 날입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은 우리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큰 역사적 사건입니다. 특히 흑인들에겐 인종차별을 넘는 감격의 날입니다. 오죽하면 흑인 직장인들이 ‘역사적인 순간’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대규모로 결근 신청을 냈겠습니까. AP통신은 흑인들이 대규모로 휴가원을 내는 것이 마치 더글러스 터너 워드의 1965년도 희곡 ‘부재의 날(Day of Absense)’을 연상시킬 정도라고 전했습니다. 희곡은 미국 남부의 한 소도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모든 흑인 노동자들이 자취를 감추자 도시 기능은 마비되고 당황한 시장이 TV에 나와 흑인들에게 복귀를 종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사랑하는 딸들에게 “아빠가 너희들을 이 위대한 여행에 데리고 가는 이유는 너희들이 가진 기회를 이 나라 모든 아이들이 갖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말하며 “아빠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독립선언문을 읽어주시면서 평등을 위해 행진하던 선조들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미국이 훌륭한 국가인 것은 원래부터 완벽해서가 아니라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할머니는 가르쳐 주셨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나라를 완벽하게 만들어 나가는 미완성의 숙제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말했습니다.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입성하는 백악관은 흑인노예들의 강제 노동으로 1800년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 때 완공됐습니다. 흑인 노예 손으로 지은 백악관이 209년 만에 흑인 주인을 맞는 것이지요. 하루하루는 뒤엉킨 것 같은데 뒤엉킨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면 나아지고 개선되는 게 세상 이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발전한다고 하는 것일까요. 이코노믹리뷰 강혁 편집국장 kh@ermedia.net<ⓒ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