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코페 "웃음 통해 시대를 위로" 추모
김학래·조혜련·김영철·박준형 등 침통
'개그계 대부' 전유성의 별세 소식에 개그계와 문화계 전반에서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후배와 동료들은 "정신적 지주이자 새로운 길을 개척한 선구자였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김학래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은 26일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어제 병원에서 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때까지도 유머로 대화를 이어가셨다"며 "전유성 선배한테 '형 우리도 곧 갈 거야' '형이 조금 먼저 가는 거야' 했더니 '그래 거기서 만나자 우리' 그러더라"고 말했다. 그는 "코미디 하면 유랑극단을 떠올리던 시대에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며 위상을 높인 분"이라고 전했다.
개그맨 엄영수는 "전유성이 교육한 후배가 40명이 넘는다. 늘 정신적 지주가 돼주셨다"며 "방송국에서 하차 위기를 겪을 때마다 '엄영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를 지켜주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입원 중에도 제 책 서평을 써주실 만큼 후배 사랑이 깊으셨다"며 "코미디 발전에 몸을 바친 분"이라고 말했다.
가수 조영남은 "코미디언 중에서 그렇게 선량한 친구가 없었다"며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후배들을 불러 연습을 시켰다"고 기억했다. 가수 남궁옥분도 "지난달 마지막으로 뵌 게 될 줄 몰랐다"며 "책과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던 귀한 분이었다"고 애도했다.
후배들의 추모도 잇따랐다. 이날 김대범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스승님께서 하늘의 별이 되셨다. 늘 젊은 감각으로 개그를 보여주셨다"고 했고, 조혜련은 "마지막까지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들으셨다. 천국에서 다시 뵙고 싶다"고 추모했다. 이경실은 "비가 쏟아지던 날 병원으로 달려가 마지막으로 인사드렸다"며 "오빠는 '너희들이 늘 자랑스럽다'는 말을 남기셨다"고 전했다.
박준형은 "지난 6월 도서관 행사에서 선배 아이디어로 개그 서가를 만들었다. 이미 쇠약했지만, 끝까지 유머와 기백은 대단했다"며 "오늘따라 삶이 짧다. 그래도 웃음은 길게 남으셨을 것"이라고 했다. 김영철도 라디오 생방송에서 "신인 시절 책 세 권을 사주시던 선배였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유성이 명예위원장을 지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조직위원회도 공식입장을 밝혔다. 조직위는 "한국 최초의 공개 코미디 무대와 개그 콘서트 실험 무대를 열며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며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주춧돌이 되어 한국 코미디가 세계로 나아가는 데 앞장섰다"고 밝혔다. 이어 "웃음을 통해 시대를 위로하고 희망을 건넨 발자취는 길이 남을 것"이라며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고 애도했다.
오랜 인연을 이어온 가수 양희은은 SNS에 "잘 가요 유성 형. 1970년 청개구리에서 첫 무대를 본 사이, 55년을 지켜본 사이"라며 "며칠 전 뵐 때만 해도 마지막일 줄 몰랐다. 회복되면 제일 먼저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는데"라고 추모글을 올렸다.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에 따르면 전유성은 25일 오후 9시5분 폐기흉 증세가 악화해 전북대병원에서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향년 76세. 장례는 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지며, 고인이 생전 활발히 활동했던 KBS 일대에서 노제를 지낼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8일 오전 8시. 장지는 전북 남원시 인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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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69년 방송 작가로 출발해 '유머 1번지', '개그콘서트' 등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희극인이 '코미디언'으로 불리던 시절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며 새로운 인식을 심었다. 후배 양성과 지방 무대 확산에도 힘썼으며, '1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등 저서를 남겨 대중과 소통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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