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소멸]⑥'제한' 벽 허물고 사람 모이는 공간으로…폐교의 변신은 '무죄'

시계아이콘02분 53초 소요
뉴스듣기 글자크기

지자체서 폐교 활용 적극 지원
노인·아동 교류의 장으로 활용
평상시엔 상업지구, 위기 땐 의료센터
여성·장애인 대상 교육 시설 역할도

편집자주"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나이지리아의 유명한 속담이다. 하지만 문장 구조를 거꾸로 배치해도 말이 된다. 마을을 유지하려면 아이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마을들이 그러하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마을들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서 낙후되고 컴컴하고 적막 속에 빠졌다. 방치된 폐교가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직접 살피고자 한다.

폐교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선례들을 보면 용도 활용의 제한을 유연화하거나 일찌감치 폐교 활용 계획을 주민·지자체 등과 함께 마련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람이 모이고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방향성을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전국 미활용 폐교 367개를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콘텐츠로 재탄생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하는 데 좋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성공 사례들을 살펴본다.

①일본 도쿄 장난감박물관
[소멸]⑥'제한' 벽 허물고 사람 모이는 공간으로…폐교의 변신은 '무죄' 일본 도쿄에 위치한 도쿄 장난감박물관. 2007년 폐교된 요쓰야 제4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했다. 도쿄 장난감박물관 홈페이지
AD

한국보다 먼저 학령인구 감소 문제를 겪은 일본은 폐교 활용의 효율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민간과 비영리 활동법인에도 참여의 기회를 열어뒀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1992~2023년 일본에서 약 7600개의 폐교가 발생했다. 수도인 도쿄도 피하지 못했다. 2007년 3월 요쓰야 제4초등학교는 제1초등학교, 제3초등학교와 통합됐다. 100년이란 역사를 지녔지만 학생 수 감소를 피하지 못했다. 자칫 요쓰야 제4초등학교 폐교 부지는 오랫동안 빈 곳으로 방치될 위기였다.


이런 위기 속에서 일본 비영리 활동법인 굿토이(Good toy)위원회는 2008년 도쿄 지요다구에 있던 장난감박물관을 요쓰야 제4초등학교 폐교 부지로 이전했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간, 접근성이 좋은 도심 속이란 조건이 필요했는데 모두 만족했다. 특히 요쓰야 제4초등학교 폐교는 큰 교실과 체육관을 가지고 있었다. 폐교 건물을 방치하고 싶지 않았던 지자체 도쿄 신주쿠구의 구미에도 맞는 제안이었다. 신주쿠구가 최대한 편의를 봐준 덕분에 장난감박물관은 지방자치단체 또는 중앙정부가 아닌 민간과 비영리활동법인이 함께 참여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소멸]⑥'제한' 벽 허물고 사람 모이는 공간으로…폐교의 변신은 '무죄' 일본 도쿄 장난감박물관에서는 아이들의 놀이를 돕는 노인 자원봉사자를 볼 수 있다. 도쿄 장난감박물관 홈페이지

현재 장난감박물관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거듭났다. 아이와 함께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의 관광객들도 장난감박물관을 찾곤 한다. 아이들은 전 세계 장난감 1만개 이상을 가지고 놀 수 있고 어른들은 과거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을 보면서 추억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점을 인정받아 장난감박물관은 2023년 '국제 어워드 어린이 박물관 어워드'를 수상했다.


장난감박물관은 지역사회와의 상생에도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장난감박물관에서는 나이가 지긋하게 든 노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장난감박물관에서 안내를 돕는 노인 자원봉사자들이다. 하지만 길만 알려주는 게 아니다. 장난감 다루길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갖고 노는지 알려준다. 단순히 아이들의 정서 발달만 돕는 게 아니라 세대 간 교류도 촉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②미국 필라델피아 보크 빌딩
[소멸]⑥'제한' 벽 허물고 사람 모이는 공간으로…폐교의 변신은 '무죄'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보크 빌딩(Bok Building). 200여개의 기업과 식당, 비영리 단체 등이 위치하고 있다. 보크 빌딩 홈페이지

미국 역시 학생 수 감소로 인해 폐교가 발생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에드워드 보크 공업고등학교(Edward Bok High School)'는 1938년 필라델피아 지역의 공업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무려 3000명의 학생을 수용할 정도의 규모를 자랑했지만 학생 수 감소와 유지 비용 문제 등으로 2013년 문을 닫았다. 필라델피아 교육청은 폐교 부지를 교육 공간 등으로 재활용하는 대신 매각을 결정했다. 건물 면적이 3만4000㎡에 달하는 폐교를 매각할 때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했다.


디자인 업체 스카우트(Scout)는 2014년 열린 공개입찰에서 175만달러(약 24억6000만원)에 폐교를 낙찰받고 상업 공간인 '보크 빌딩(Bok Building)'으로 바꾼다. 폐교를 지역 주민을 위한 상업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큰 공사를 벌이지 않는 대신 임대료를 낮춰 소규모 기업, 돈 없는 예술가들이 자리 잡도록 했다. 폐교가 새로운 역할을 찾는 데에는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소멸]⑥'제한' 벽 허물고 사람 모이는 공간으로…폐교의 변신은 '무죄'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보크 빌딩(Bok Building)이 들어오기 전에 있던 에드워드 보크 공업고등학교(Edward Bok High School). 3000명의 학생을 수용할 만큼 규모가 컸지만 학생 수 감소로 2013년 폐교됐다. 보크 빌딩 홈페이지

현재 보크 빌딩에는 200개가 넘는 기업과 예술가, 식당, 비영리 단체가 들어와 있다. 여러 예술가가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실도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현재 보크 빌딩은 매년 25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옥상에 조성된 식당 '보크 바(Bok Bar)'는 필라델피아 전경을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 관광객들에게 유명하다.


단순히 장사만 이뤄지는 공간은 아니다. 보크 빌딩은 지역 커뮤니티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보크 빌딩은 필라델피아 지역 주민을 위한 의료 센터로 변모했다. 주민들은 보크 빌딩에서 무료로 코로나19 확진 여부에 대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지역 이민자들은 보크 빌딩에 위치한 와이스 웰니스 센터에서 의료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저렴하게 치료받는 게 가능하다. 미국 대선이 열릴 때면 보크 빌딩은 투표소로도 활용된다.

③경기 성남 꿈꾸는 예술터
[소멸]⑥'제한' 벽 허물고 사람 모이는 공간으로…폐교의 변신은 '무죄' 2019년 폐교된 경기 성남시 영성여자중학교 폐교 부지를 활용한 '꿈꾸는 예술터'에는 노인부터 유아까지 들을 수 있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열려 있다. 꿈꾸는 예술터 홈페이지

국내에서도 폐교를 잘 활용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꿈꾸는 예술터'는 학생 수 감소로 인해 2019년 폐교된 성남시 영성여중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꿈꾸는 예술터는 핀란드 헬싱키시 '아난탈로' 사업에서 착안한 예술교육 기관이다. 아난탈로 역시 헬싱키시의 폐교된 초등학교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예술교육 기관으로 만든 선례다. 현재 영성여중 폐교 부지에는 작업실과 스튜디오, 유아 놀이방이 구비된 5층 높이의 예술교육 기관이 들어와 있다.


폐교되기 전부터 시와 교육청이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합심해 예술교육 기관을 준비했기에 자리 잡는 게 가능했다. 2017년 12월 성남시와 성남교육지원청은 영성여중 시설 활용을 위한 협약식을 열고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아울러 성남시 산하 성남문화재단은 주민의 의견을 청취하는 간담회도 진행했다. 예산 확보는 순탄했다. 성남시는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 공간 활용 문화예술교육센터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30억원을 확보했다. 나머지 30억원은 성남시가 지원했다.


AD

꿈꾸는 예술터는 2020년부터 지금까지 약 820개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10만여 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현재도 유아부터 성인까지 목공과 그림, 음악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강좌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꿈꾸는 예술터 관계자는 "이 사업은 생애주기별로 맞춤형 교육을 기획해 진행하고 있다"며 "향후 폐교 건물을 벗어나 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외부에서 교육 사업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멸]⑥'제한' 벽 허물고 사람 모이는 공간으로…폐교의 변신은 '무죄'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06.1114:00
     송인수 "채용을 바꿔야 교육이 바뀐다"
    송인수 "채용을 바꿔야 교육이 바뀐다"

    "출신 대학을 보고 채용하는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도 없다." 송인수 교육의봄 대표는 아시아경제의 인터뷰에서 "기업이 채용할 때 지원자의 능력보다 '출신학교'를 보고 뽑기 때문에 학벌 경쟁이 벌어지고, '학벌'을 얻기 위해 사교육비 폭증이 생기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2020년 창립한 교육의봄은 대한민국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학벌 없는 채용'이 핵심이라고 보고, 기업의 채용 변화에 나

  • 25.06.1114:00
     윤지관 "대학 특성화로 서열 구조 타파해야"
    윤지관 "대학 특성화로 서열 구조 타파해야"

    "대학 특성화를 통해 지방 대학을 살려야 서울 중심 대학 서열 체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윤지관 대학문제연구소 소장은 아시아경제와 만나 "서울 중심의 대학 서열 구조는 교육을 넘어 저출산의 원인이 되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라고 말했다. 2014년 설립된 대학문제연구소는 대학 문제가 고등교육만이 아니라 인구, 사회불평등구조, 국민복지, 지역균형발전 문제 등 국가 의제와 맞닿아 있다는 인식 아래 해법을 연구해

  • 25.06.1114:00
     남궁지영 "정권 변해도 교육 정책은 백년가야"
    남궁지영 "정권 변해도 교육 정책은 백년가야"

    수능 응시자 3명 중 1명은 N수생인 시대다. N수생 증가는 수능 대비를 위한 사교육 증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교육 불평등 확대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에서 개선되어야 할 대표적인 교육 문제로 꼽힌다. 최근 N수생 실태를 조사한 남궁지영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잦은 입시 정책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야말로 교육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남궁 연구위원은 "2019년 조국

  • 25.06.1015:00
     벤 넬슨 "입시, 대학 자체 기준으로 뽑아야"
    벤 넬슨 "입시, 대학 자체 기준으로 뽑아야"

    "한국의 대학 입시 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모든 대학이 '하나의 시험'으로 인재를 선발할 게 아니라, 각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에 따라 자율적으로 뽑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벤 넬슨(Ben Nelson) 미네르바 대학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아시아경제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대학별로 자체적인 입학 기준을 가져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넬슨 설립자는 대학의 인재 선발 확대가 수험생(학생)들이 자신에게 적합

  • 25.06.1015:00
     양오봉 "국가교육委 역할과 권한 강화해야"
    양오봉 "국가교육委 역할과 권한 강화해야"

    양오봉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전북대 총장)은 '입시 지옥'으로 대변되는 한국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인 토론형 교육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양 총장은 아시아 경제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교육부터 대학 교육까지 지식 전달식(주입식)으로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 문제"라고 짚으면서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교육보다는 암기,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이 아직도 개선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양 총장은

  • 25.06.1408:00
    트럼프가 가로막은 하버드 유학…美 대학 전역으로 퍼지나
    트럼프가 가로막은 하버드 유학…美 대학 전역으로 퍼지나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학교를 겨냥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서면서 전 세계 유학생들 사이에 큰 혼란이 일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중국 공산당과의 연계를 문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버드대의 진보적 성향과 반유대주의 시위에 대한 정치적 공세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몇 주간 세 차례에 걸쳐 하버드 대학교 유학생 등록을 막고 비자 발급을 취소하려 했지만, 매번 미국 연방법원의 제동에 부딪혔다. 하

  • 25.06.1109:50
    강원택 "국민의힘 한심, 다투는 것도 한가로워"
    강원택 "국민의힘 한심, 다투는 것도 한가로워"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부 교수가 아시아경제 시사 유튜브 채널 'AK라디오'에 출연해 "이재명 정부의 첫인사는 무난했다. 문재인 정부 첫인사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지난 10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충무로 아시아경제 스튜디오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강 교수는 "당장은 경제가 급하지만, 이 대통령이 국가의 장기 발전과 관련한 인프라를 깔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입법권이 사법권을 침해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

  • 25.06.0707:30
    美 월가 새 경제용어, '타코'에 트럼프가 격분한 이유
    美 월가 새 경제용어, '타코'에 트럼프가 격분한 이유

    최근 미국 월가에서 '타코(TACO)'라는 신조어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멕시코 음식 타코가 아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하는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서 이 용어를 사용한 기자에게 "무례하다"며 강하게 반발한 가운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영상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월가의 신조어 타코는 'Trump Always Chicken

  • 25.06.0517:15
    ②박명호 교수 "이 대통령 과반 못 넘은 것 항상 유의해야"[AK라디오]
    ②박명호 교수 "이 대통령 과반 못 넘은 것 항상 유의해야"[AK라디오]

    5일 오전 9시 아시아경제 유튜브 채널 'AK라디오'에 출연한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은 기회와 위기 요인을 동시에 갖고 있다"며 "단기보다는 중장기를 준비하는 리더십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보수의 키맨은 이준석·한동훈이 될 것"이라면서 "총선이 많이 남아 있어 국민의힘의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선 결과가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승부는 이미 결정된 선거였다. 기본적

  • 25.06.0417:35
    ①김만흠·채진원"대선 결과는 계엄 심판, 독주 견제"[AK라디오]
    ①김만흠·채진원"대선 결과는 계엄 심판, 독주 견제"[AK라디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이재명 후보는 49.42% 득표율을 기록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41.15%),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8.34%),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0.98%)를 제쳤다. 4일 오전 9시 아시아경제 유튜브채널 'AK라디오'에 출연한 김만흠 전 국회 입법조사처장과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계엄에 대해 심판하면서도 이재명 후보가 과반을 얻지 못하고 김문수 후보와의 격차가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