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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금융리더십]④무력화된 내부통제...거수기된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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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이창환 기자] # ‘○○○(국내 지역명) 상왕(上王).’ A금융지주회사 내부에서 B사외이사를 일컫는 말이다. B사외이사는 2019년부터 2년간 임기가 끝난 후 1년씩 2번 임기가 연장돼 총 4년 가까이 A사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외부 전문가로서 대주주 또는 경영진을 견제하는 것이 사외이사 제도의 요체라지만, 인사청탁 등으로 상당한 ‘실권’을 행사하는 해당 사외이사의 행보를 두고 A사 내부에선 뒷말이 많다는 것이 금융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B사외이사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배경엔 A사 대표이사인 C회장이 있다. C회장의 연임을 위해선 이사회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B사외이사와의 관계 형성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 “우리은행이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 거기에 법정사항을 모두 포함시켰고, 위 내부통제기준의 실효성이 없다고 볼 수 없는 이상 피고(금융감독원)가 지적하는 여러 사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을 내부통제기준 자체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유로 제재할 수는 없어 결국 피고의 이 사건 처분사유를 모두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2022. 12. 15. 선고 2022두54047 판결)


손 회장이 금감원을 상대로 낸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F) 사태 문책경고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무력화된 내부통제시스템이 꼽힌다. 현행법상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의무지만, ‘준수’ 하는 것은 의무사항이 아닌만큼 금감원의 문책경고 처분 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종 승소한 손 회장은 이를 발판 삼아 라임 사태 관련 소송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크고 작은 금융사고에도 연임, 3연임에 도전장을 낸 배경엔 무력화 된 견제장치가 있다. 독립적인 위치에서 대주주 또는 경영진을 견제하라는 목적으로 사외이사 제도가 강화돼 왔지만 정작 CEO는 이들과 유착 관계를 형성하면서 공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외이사가 일종의 ‘거수기’가 됐다.


금융회사의 내부통제시스템도 무력화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DLF 사태, 라임 사태에서 드러났듯 모호한 규정을 빌미로 금융사 CEO들은 책임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실무자들은 책임을 지고 옷을 벗거나 징계를 받는 반면, 내부통제의 총괄 책임자인 CEO는 처벌 제외는 물론 연임, 3연임까지 시도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흔들리는 금융리더십]④무력화된 내부통제...거수기된 사외이사 사진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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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기 된 사외이사

아시아경제가 국내 4대 금융지주사(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해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전체 94개 결의안건(산하 위원회 안건 제외) 중 93개 안건이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나머지 1건조차 반대의견이 1건 제기됐을 뿐 안건 자체는 무난히 통과됐다. 반대의견 및 부결이 이사회의 독립성을 판단하는 유일한 지표는 아닐 수 있지만, 그럼에도 반년 동안 '이의제기' 자체가 단 1건에 머물렀다는 점은 금융지주 이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한 사외이사는 변양호 전 신한금융 사외이사(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다. 그는 지난해 3월 신한금융의 자기주식 취득 및 소각 건과 관련해 "자사주 취득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자사주 취득 정책에 대한 접근방법 및 소통방식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이사회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그는 최근 “독립적인 사외이사의 한계를 절감했다”면서 사외이사직에서 조기사퇴했다.


금융권에선 이처럼 이사회가 견제능력을 상실한 원인으로 CEO와 이사회 간의 '순환구조'를 지목한다. CEO가 선임한 사외이사들이 다시 CEO 후보를 결정하고, 다시 이들이 CEO에 의해 사외이사로 재선임 되는 순환구조가 사외이사들의 독립성을 상실케 했다는 것이다. 회사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감사 역시 이같은 구조로 무력화돼 있긴 마찬가지다.


금융권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은행 사외이사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을 거쳐 선임된다곤 하지만 면면을 보면 기본적으론 대통령실(또는 청와대)에서 꽂는 인사나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출신 인사, 금융사 CEO 측근, 검사 출신 등으로 구성돼 있다"면서 "이렇게 추천된 이들이 다시 회장 후보 추천 및 선임과정에서 CEO나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다시 이들은 재선임되며 결과적으로 거수기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짚었다.


전술한 A금융사의 ‘○○○ 상왕’은 이같은 CEO와 사외이사 간 공생관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연임을 목적으로 하는 CEO는 사외이사에게 인사개입 등 각종 편의와 혜택을 제공하고, 사외이사는 CEO가 재임하던 시절 벌어진 각종 금융사고에 대해 눈감고 연임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 안팎에선 금융사 이사회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금융지주사 이사회 구성과 관련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대표이사의 견제·통제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깊이 공감한다"며 "지배구조법 개정을 깊이 연구해서 국회 논의 과정에 참여할 것"이라고 개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외 KB금융, IBK기업은행 등에선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시도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무력화 된 내부통제시스템

내부통제 시스템 역시 무력화 돼 있긴 마찬가지다. 내부통제란 사전적으로 금융회사가 건전성, 소비자 보호, 준법 경영 등을 위해 고안하고, 모든 임직원이 준수해야 하는 일련의 통제과정을 일컫는다. 현재 은행, 증권, 보험사 등 금융사들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에 따라 자체적인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하지만 국내 금융사들의 내부통제 의지는 박약하단 평가다. 자본시장연구원이 발간한 '주요국 내부통제 제도 현황 및 한국 내부통제 제도 개선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금융사 중 상당수는 내부통제를 단순한 ‘법규(컴플라이언스) 준수’ 의무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만큼 내부통제기준 마련, 내부통제 시스템 구축에 별 다른 투자를 하지 않는 등 소극적인 대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연임, 3연임 등을 목표로 하는 CEO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할수록 내부통제가 형식에만 그쳐 금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 금융권을 진동시켰던 라임 및 옵티머스자산운용 등의 대규모 펀드 불완전 판매 사건, DLF 사태 등은 성과에 매몰된 금융사들이 일으킨 대표적 내부통제 실패 사례로 회자된다.


제재 수준도 낮은 편이다. 한국은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하면 금융회사에 대해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치며, 처벌도 CEO까지 최종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법 규정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부분이 많아 실제 처벌에 이르는 과정이 쉽지 않다. 실제로 금융사들이 감독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라임 사태, DLF 사태 관련 각종 소송에서 승소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이는 내부통제 시스템 구축 및 운용에 공을 들이는 해외 사례와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미국, 영국 등 금융선진국의 금융회사들은 내부통제를 전사적 운영리스크 관점으로 이해하고 컴플라이언스 뿐 아니라 소비자보호, 내부회계, 정보보호, 리스크관리, 자금세탁방지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적극 대응하고 있다. 역량 강화를 위해 대규모 인적, 물적 투자를 수행하고 있으며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혁신 기술까지 접목해 내부통제 시스템 구축에 나서는 중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의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는 원칙 중심의 규율에 가까운 조항이라 실효성이 부족하다"며 "금융사의 내부통제 역량 강화를 위해 지배구조법에서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아울러 "지배구조법 제24조 제1항의 개정을 통해 금융사 이사회로 하여금 내부통제기준의 제정 및 개정 권한, 개정 요청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내부통제기준 마련 및 운영의 법적 책임을 CEO, 준법감시인, CCO(소비자보호 총괄책임자), CRO(리스크관리 총괄책임자) 등에게 명확히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사 투명한 거버넌스 필수" 선진화 나선 정부

이렇듯 금융회사 CEO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기 시작하면서 정권 차원에서도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임원후보 추천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단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7일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을 통해 "똑같은 정부를 가지고도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과 덩샤오핑(鄧小平)의 중국은 달랐다. 금융사 역시 CEO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주인이 없는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보다 임원, CEO의 선임절차가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도 적극 행보에 나섰다. 그는 지난 30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선진화'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으로, 그렇기에 자유로운 설립 대신 인허가 형태로 운영중이고 과거 위기 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을 했다"면서 "그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최근 BNK, 신한, NH농협, 우리금융지주 등의 CEO 교체를 두고 관치(官治)로의 회귀를 우려하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선 "은행이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에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관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내부통제 강화 나선 정부…잘 될까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8월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내부통제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올해 1분기 내 입법예고를 목표로 관련 제도개선 강화 방안을 논의 중에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내부통제 개선안의 핵심은 CEO와 이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보다 명확히 규율하는 것이다. 금융회사의 한 임원을 예로 들면 그가 어떤 직위에서 권한을 수행하는지, 어떤 업무 범위와 영역에 책임을 지는지, 또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어떤 활동을 수행하는지에 대해 법령에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 제24조에선 내부통제와 관련해 '금융회사는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 및 이해관계자를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 및 절차(내부통제기준)를 마련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불분명한 측면이 크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해 손 회장이 금감원을 상대로 낸 DLF 사태 관련 중징계 취소 소송 최종심에서 원심 확정판결을 내리면서 내부통제 마련 의무와 준수 의무를 구분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내부통제를 마련하는 것은 의무지만, 준수 여부는 의무사항으로 볼 근거가 없단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당국은 향후 내부통제 개선 방향으로 ▲임원별 금융사고 발생 방지 책임을 구분 ▲금융사고 발생 방지를 위한 관리의무 부여 ▲금융사고 발생 시 담당 임원 제재 및 필요시 면책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 내부통제 감시 의무 명확화 등을 꼽았다. 예컨대 중대 금융사고는 최고경영자(CEO)가, 일반 금융사고는 기타 임원이 책임지도록 하는 등 금융회사 스스로가 임원별 책무 영역을 사전에 확정하고 이를 금융당국에 제출하는 한편,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적정한 조처를 할 의무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또 이사회의 감시 의무를 구체화하기 위해 상법상 이사회의 감독책임 조항을 지배구조법에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현행 상법엔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 이사는 회사에 대해 연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선 비관론도 적지 않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다소 뒤늦은 감이 있지만 CEO 등 임원의 책임과 역할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기는 하나 국내 금융지주사의 문화상 실효성을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벌써부터 면책 조항도 논의되는 등 구체적 입법 과정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더 넓어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김시목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내부통제 준수를 법으로 의무화하고 위반시 제재할 경우 이는 내부통제가 아닌 ‘외부통제’가 될 수 있다"며 "효과적으로 내부통제가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위해 회사 내부에서 CEO를 중심으로 임직원의 준수 여부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CEO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경우 이를 감독당국에서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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