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사이에서 공유되는 '공부자극 영상'
유명 인터넷 강사들 독설 담아
소위 '팩트 폭행'으로 수험생 의욕 고취
일부 '센 영상'들, 예민한 청소년에 불안감 줘
전문가 "학생들 받아들일 수 있는 자극 수준 천차만별"
"불특정 다수에게 자극 영상 노출되는 것 지양해야"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너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 갈 수 있겠어?", "여러분을 믿고 계신 부모님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등에는 이른바 '공부자극 영상'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영상들은 유명 인터넷 강사가 학생들에게 독설을 쏟아내는 장면을 모아 짧은 클립으로 만든 것이다.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동기를 상실했을 때 이같은 영상을 보며 각오를 다진다.
문제는 일부 자극 영상들이 단순히 동기 부여를 넘어 폭언, 욕설, 모욕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평생 패배자로 살게 된다"며 공포를 조장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학생들에게 지나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는 청소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극 수준이 제각각인 만큼 '공부자극 영상'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공부자극' 검색하니 쏟아지는 독설들
7일 유튜브에 '공부자극'을 검색하면 유명 강사들의 소위 '팩트폭행 메시지'를 담은 영상들이 쏟아진다. 영상의 메시지는 대부분 '지금 열심히 수능을 준비해 대학에 합격해야 인생이 핀다'는 게 핵심으로, 강사들은 "여러분에게 매달 학원비 주는 부모님 얼굴을 떠올려 보라", "대학 못 가면 평생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한다" 등 발언으로 학생들을 자극한다.
2021학년 수학능력시험이 약 4개월을 앞둔 현재, 공부자극 영상은 온라인 공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영상 댓글란에는 마음을 굳게 먹고 공부에 임하겠다는 수험생들의 각오로 가득하다. 한 수험생은 "선생님들 영상을 보고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인생 망치지 않으려면 나한테 주어진 이 1년을 죽기 살기로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공부자극은 단순히 영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부 학생들은 소위 '자극 명언'을 글로 옮겨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트위터 등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SNS에서는 수험생들이 서로 자극을 해주기도 한다. 한 누리꾼은 "폭언, 욕설해도 괜찮으니 제 정신 붙잡아 줄 공부자극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따위 할 거면 포기해" 자극에 피멍드는 청소년
문제는 일부 공부자극 영상이 청소년들에게 과도한 불안감을 심어준다는 데 있다. 특성상 자극 영상은 대부분 학생들의 게으름을 지적하거나, 죄책감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의욕을 상승시킨다. 소위 '센 영상'은 "이 따위로 할 거면 그냥 포기해라", "너는 안 될 인간이다" 폭언, 욕설을 동반한다. 일부 강사들은 "좋은 대학 못 가면 평생 노가다, 편의점 알바만 하게 된다"며 특정 직업군을 비하하기도 한다.
일부 학생들은 공부자극 영상을 보다가 오히려 자존감 하락을 겪었다며 호소했다. 고등학생 A 군은 "10분 넘게 강사들에게 사실상 인신모욕을 당하니까 도저히 멘탈이 버티지를 못하겠더라"며 "공부 동기부여가 아니라 우울증이 먼저 올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시민들은 과도한 공부자극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의 불안감을 키울 수 있다며 우려했다.
20대 직장인 B 씨는 "우리 세대도 입시공부할 때 동기부여랍시고 이런 영상 클립들을 돌려봤다"며 "일부 영상들은 너무 노골적으로 학생들을 깎아 내려서 오히려 의욕을 꺾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한 수학학원 강사인 C(44) 씨는 "저도 학생들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폭언, 욕설에 가까운 영상으로 공부 의욕을 고취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며 "우리나라가 청소년 자살률 1위를 찍고 아이들이 불행한 이유가 뭐겠나. 이런 식으로 자꾸 아이들을 바짝 조이니 그런 게 아닐까"라고 우려를 표했다.
◆전국 중·고등학생 4명 중 1명은 우울감 겪어…공부 압박 때문
이 가운데 학생들이 느끼는 학업 스트레스는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1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중·고등학생 25.2%는 최근 1년간 우울감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우울감은 단순히 감정적 우울이 아닌,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끼는 경우를 뜻한다.
학생들이 받는 정서적 우울의 원인은 성적 등 공부에 대한 압박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13~18세 청소년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6.5%는 성적·적성 등 공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답했다. 외모(12.5%), 직업(12.2%), 건강(6.6%) 고민보다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전문가는 청소년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자극의 수준이 다른 만큼, 이같은 방식의 공부 의욕 고취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림대 자살과학생정신건강연구소 소속 이미선 부소장은 "학생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자극의 수준이 다르다. 어떤 학생은 일정 수준의 충격을 받아도 빨리 회복하는가 하면, 또 다른 학생에게는 일생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며 "불특정다수의 학생이 이러한 영상에 노출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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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영상을 통한 교육의 경우 영상 앞에 주의 문구를 붙이는 등 학생들의 경각심을 높이는 등 방안이 필요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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