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경기, '마라톤'은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전쟁 당시 마라톤평원에서 벌어진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경기로 알려져 있다. 마라톤에서 아테네로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뛰어갔다가 지쳐 죽은 전령병을 기리기 위한 걸로도 알려져 있는데, 실제 역사 속에서 이 전령병은 아테네를 향해 달린 적도 없고 승리를 외치고 죽지도 않았다.
마라톤에서 아테네로 뛰어간 전령병의 이름은 페이디피데스로 알려졌다. 이 전령병은 승전보를 전하러 아테네로 간 게 아니라 구원병을 요청하러 스파르타로 뛰어갔으며, 마라톤전투에서 승전하고 멀쩡히 아테네로 개선했다. 실제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뜀박질한 병사는 이 전령병 1명이 아니라 당시 마라톤전투에 참여한 병사 1만명 전체였다. 이들은 30㎏이 넘는 군장을 한 채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약 40㎞ 거리를 3시간 만에 주파, 아테네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죽음의 행군을 펼쳐야만 했던 것은 당시 페르시아군이 두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아테네군 전력의 2배이던 페르시아군은 병력을 둘로 나눠 육군이 마라톤에서 아테네군을 붙들고 있는 사이에 해군이 배를 타고 남하해 아테네 본진을 급습하는 양동작전을 짰다. 전군을 몰고 마라톤으로 나온 아테네군은 어쩔 수 없이 양면전을 해야 했고, 도박과도 같은 전투가 시작됐다.
마라톤전투는 아테네군 입장에서 처음부터 분초를 다투는 싸움이었다. 페르시아 함대가 출발하기 전에 페르시아 육군을 밀어내고 함대도 궤멸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전투였다. 결국 아테네군은 페르시아 육군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사이 페르시아 함대가 아테네로 출발해버렸다.
결국 전투를 마치자마자 아테네 장병들은 30㎏의 완전군장을 한 채 아테네까지 전속력으로 뛰어가야 했다. 간발의 차로 아테네군은 페르시아 함대보다 먼저 성에 도착했고, 페르시아군이 상륙작전을 포기하면서 아테네군은 겨우 승리했다. 페르시아군이 그대로 상륙했다면 크게 지친 아테네군은 승리를 장담키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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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과도 같은 승리라 고대부터 서구 사회에서는 요행수로 넘어간 전투로 회자됐지만,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이 마라톤전투는 크게 미화됐다. 페이디피데스가 갑자기 조국의 승전보를 알리고 죽은 아테네의 영웅이 된 것도, 고대올림픽 당시 존재하지 않던 마라톤이란 경기가 근대올림픽의 주종목으로 채택된 것도 모두 마라톤 미화 작업에서 시작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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