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姓)이라는 한자를 뜯어보면, '여자'와 '태어남'이란 의미가 들어있다. 이 말은 모계사회 때의 자취라고 한다. 남녀의 혼음이 보편적 짝짓기 시스템이었을 무렵, 아이가 태어날 경우 그 아버지를 가리기 어려웠다. 다만 아이를 낳은 어머니만 확실했다. 그 아이에게 부여한 것이 성(姓)이다. 어머니가 김씨면 김씨가 낳은 자식들은 모두 김씨가 된다. 그들에게 아버지란 개념은 없었다.
무기의 발달로 전쟁이 잦아지면서 다른 종족의 여성을 빼앗아 아내와 노예로 삼는 일이 늘어났다. 농경사회가 되면서 남성의 노동력이 중요해졌을 것이다. 무리 내에서 남성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아버지의 개념이 생겨난다. 농경의 익숙한 개념을 따라, 어머니는 밭으로 비유되고 아버지는 씨로 비유되었다. 곡식이 생겨났을 때, 우리는 밭이 곡식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씨가 곡식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으로, 아버지의 나라는 확고해졌다. 이 씨라는 개념이, 우리 성에 붙어있는 씨(氏)가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성(姓)이 뭐냐고 물으면, 김씨(氏)라고 대답하는 풍경. 여기에, 모계사회의 개념인 '성'이,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슬쩍 바뀌어버렸다는 것을 웅변한다. 그렇지만 김씨를 김성(姓)이라고 하지 않는다. '김성'은 모계사회에서 쓰였을 법한 호칭법이다.
몇년전 '아버지가 없는 나라'라는 책이 나와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는 아직도 모계사회로 살아가는 종족이 있다. 모쒀족도 그중 하나인데, 양 얼처나무라는 모쒀족의 여인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머니 밖에 없는 나라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들에게도 물론 고난이나 어려움이야 있겠지만, 부계사회보다 평화롭고 지혜로울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제 바야흐로 세상이 바뀌어, 여성의 권리와 역할과 능력과 권력과 권한이 남성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명과 경제와 삶의 방식 전체가 변화하는 양상이, 여성친화적이지 않겠느냐는 진단도 나와 있다. 이런 변화가 모계사회로의 단순 회귀를 의미하지는 않겠으나, 모계혈통 자체가 다시 중시되는 한 방향을 만들어낼 것 같기는 하다. 이런 흐름을 타고, 아버지 또한 기존의 역할과 권위를 잃었다. 아버지가 지녔던 수신-제가의 리더십과 장이부재의 사회적 존경심은 이제 박물관과 도서관으로 들어가고 있는듯 하다. 이제 아버지에게 필요한 '가치'나 '태도'는, 착하고 유연하고 상냥한 어른이면서 아이와 잘 놀아주는 보육적 역할이나 딸바보와 같은 무한헌신이 강조되는 듯 하다. 예전의 기준으로 보자면 아버지가 없는 나라가 되었고, 다시 보면, 새로운 아버지가 생겨나는 나라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아버지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아버지들이 마지막 철도원(일본 영화 속의)처럼 가만히 완장을 내려놓으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란 말만 꺼내도 왈칵 눈물이 나는 서러움의 지점에 몰려있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아버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할 말이 많지만 할 말이 없기도 한, 저 침묵 속에서 우린 실부(失父)사회로 가만히 접어들었다. 아버지가 없어져도, 아버지의 정신과 아버지의 가치가 이 사회에서 모두 사라져도, 아무런 변화도 없을까. 우리가 뭔가 다시 회생시키지 못할 중요한 것을 놔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개운찮은 자각증세가 살짝 있긴 하지만, 그 뿐이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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