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죽음과 노인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데는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영향이 큽니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일에는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는 것이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일 것입니다.
시어머님은 위암으로 투병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6개월 정도 집에서 모셨습니다. 지혜로운 어머님의 조용한 죽음 채비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것이 참 많았지요.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신 어머님은 주변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변에 나누어 줄 것들은 다 나눠 주셨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본인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갖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살아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시어머님께서 점점 힘겨워하시는 것이 느껴질 무렵, 저는 집에서 시어머님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소 신망하는 지인께 상의했더니 그 분의 의견은 환자가 혹시 마지막 순간이라도 의사가 곁에 있기를 바랄지도 모른다고 말씀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 그럴 수도 있겠 구나’ 싶어 시어머님께 조심스럽게 여쭈어봤습니다.
“어머님, 고통이 심하시면 병원으로 모실까요?"
어머님의 답변은 집에 계시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집에서 임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환자의 마지막 고통을 덜기 위해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조차 의사의 진단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병원에 다녀올 형편이 되지 않는 임종 직전의 환자에게는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는 분의 도움으로 진통제를 구해 고통을 덜어드리고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님 방에서 편안하게 이승과 작별을 하셨습니다.
제가 어머님의 임종을 집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냥 내가 죽는다면, 낯모르는 병실이 아닌 내가 익숙한 공간에서 낯설지 않은 느낌으로 죽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임종을 얼마 안 남긴 환자가 병원으로 옮겨지는 자체가 이미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세상에 버림받는 가상의 죽음 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살기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병원에 가야겠지만 회복불능 판정을 받은 환자가 임종 직전 병원으로 가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을 연장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친구 어머님의 죽음을 곁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살리고자 하는 시술이 아닌, 연명하기 위한 시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많은 고통을 감수하는 모습을 보고 친구는 병원의사들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도대체 죽어가는 사람에게 뭐하는 짓이냐고? 살려내기 위한 것이 아닌, 환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과정을 보며 친구는 경악을 했습니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것이 제게는 큰 공부가 됐고 어머님의 임종을 집에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 대법원에서 존엄사를 인정했다고 합니다.
단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 명백한 경우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으려는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판단 근거는 회복불가능한 사망단계 진입 및 환자의 치료 중단 의사라고 합니다.
노인이 많아지는 고령사회, 죽음은 큰 화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죽음을 먼 남의 일처럼 생각할 수 없는 노년층이 많아지는 고령사회, 죽음을 외면만 할 것이 아니라 직시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죽음은 우리가 오랫동안 풀어내야 할 숙제입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병원에서 태어나서 병원에서 죽는 것이 현대인의 숙명일까요?
미국 베이비붐 세대들이 자신이 임종할 장소로 꼽는 곳은 자신이 살던 집이라고 합니다. 초고령사회 일본 노인들이 꿈꾸는 것은 건강하고 활기차게 팽팽하게 살다가 덜컥 죽음을 맞이하는 '핑핑코로리'라고 합니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 하루 이틀 앓고 3일째 죽는 것이 우리나라 노인들의 희망사항이라고 합니다. 웰빙에 이어 이제 웰다잉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잘 살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을 하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요.
리봄 디자이너 조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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