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0일자 경제레터 <남과 다르게, 어제와 다르게>의 2편입니다.
다른 약국에선 손님이 없으면 TV를 보고 바둑을 두며 소일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저자는 손님이 찾는 집을 함께 찾아주는 일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3일정도 지나면 손님을 데려다 주었던 그 집 주인이 약을 사러 나타났고 약이 필요 없으면 친척들에게 입소문을 내주었다고 합니다.
요즘 제약광고는 30억원을 광고하면 매출은 15억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또한 영업사원들이 신규계약 고객을 찾아다닌다고 계약이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기존 고객에게 잘 하면 3~4명을 소개시켜주기 마련입니다. 그게 입소문의 잠재력이죠.
고객이 늘어나느냐,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느냐의 균형문제도 입소문에 달려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남아도는 시간에 그저 봉사한 짓을 소문냈던 것입니다. 전화를 걸기 힘들었던 시절, 공중전화도 제대로 없었으니 만만한 게 육일약국 전화기였습니다.
어렵게 사는 동네주민들이 수시로 전화를 빌려달라고 약국에 들어왔습니다. 짜증낼 일이 아니라 반가운 일이죠. 그래서 일부러 전화선을 5m정도 길게 늘여놓아 조제실에서 들고 나오면 손님이 받기 쉽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저자는 장거리전화를 길게 하는 손님을 보면 언제 끊을까 걱정하며 속으론 애가 탔으나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전화를 걸며 화를 냈던 손님도 전화를 끊고 나갈 때는 미안했던지 50원이나 100원짜리 동전을 놓고 나갔지만 그 돈은 절대 받지 않고 따라가서 주머니에 도로 넣어 주었답니다.
그러면 다시 들어와서 아기들 영양제를 하나 달라고 하거나 그날 돈이 없으면 월급날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나 고마운 마음이 들면 반드시 보답을 하기 마련이라고 본 것이죠. 특히 조직에서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아래 사람에게 함부로 막 대하는 사람들은 훗날 그 대가를 어떤 식으로든지 받는다고 그는 생각합니다.
일로 사람을 만났다가 헤어지며 생각 없이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자는 손님을 항상 은인으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밥을 먹도록 해주는 게 곧 은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5배 친절하고 1.5배 열심히 하자
남들이 하는 것보다 1.5배 친절하고, 고객이 기대하는 것의 1.5배를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고 보았습니다. 1을 기대하고 들어온 사람에게 0.8을 하는 것과 1.5를 하는 것의 차이는, 문을 꽝! 닫고 나가느냐와 다시 찾아오느냐의 차이라고 보았죠.
이왕에 할 거 조금만 더 하는 게 1.5입니다.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임계점이 곧 감동이고, 그건 ‘이왕이면 그 사람을 찾아가라’며 입소문을 내는 임계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남보다 100배 노력한 게 아니라 1.5배를 꾸준히 노력한 끝에 그런 성공을 이룬 것이란 확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1.5배라는 것은 까치발로 손을 뻗으면 확실히 손에 잡히는 범위 안에 있다고 봅니다. 대부분은 0.9배와 1.4배 사이에 존재하며 일터에서는 1.5배 잘하는 직원을 보면 주위에서 시기하는 직원들도 생깁니다. “그냥 대충 일해도 되는데 자기가 무슨 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하고.
그래도 묵묵히 1.5배를 일하며 그걸 극복해야 자기 손으로 성공을 붙잡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 힘은 0.8밖에 안 들고 행복이 1.5배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때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다 보니 행복한 약사로
그는 살기 위해서 일하다 보니 어느덧 행복한 약사가 돼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무슨 날이 되어 떡이라도 해서 갈 때면 꼭 따로 싼 떡을 들고 약국에 들어와서 “약사양반, 이거 뜨거울 때 먹어봐요”라며 주고 갔습니다.
참기름을 짜서 갈 때도 역시 한 병을 따로 담아 놓고 갔습니다. 돈 없는 노인들은 경로당에 누가 찾아와서 천원짜리라도 생기면 그걸 들고 약을 사러왔으나 차마 그 돈은 받을 수가 없었답니다.
어른들은 온몸이 아프다지만 아픈 곳을 말하는 것보다 지나간 수십년 전의 신세한탄을 하고 갔습니다. 살면서 사람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 분들에게 말동무가 되어 준 것입니다. 밀감이나 사탕 몇 개를 싸들고 와서 먹어보라고 할 때는, 밀감을 까서 맛보곤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표정과 함께 어른의 입에도 넣어드렸습니다.
그런 약사의 말과 얼굴을 보고 행복해하는 어른들을 보며 같이 행복을 느꼈다고 합니다.
‘더러워서’와 ‘감사해서’의 차이
저자는 어느 날 토론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 선배로부터 “요새 약국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고 푸념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내용인즉 당시 140원에 들어오는 드링크를 150원에 팔면서 10원을 벌자고 손님이 오고 갈 때마다 인사를 해야 하는 자기신세를 한탄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선배 약국의 매출이 육일약국보다 3배나 많았는데도 말입니다.
결론은 같은 약국일지라도 그 선배는 손님이 ‘더러워서 못해먹는 장사’를 하고 있었고 저자는 찾아오는 손님이 ‘감사해서 어쩔 줄 모르는 장사’를 하고 있었던 차이였습니다. 그 차이는 10년 후 육일약국이 100배 이상 성장해 있었을 때 그 선배는 겨우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 차이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교방동 육일약국 갑시다!”
그러면 육일약국의 현실은 어땠을까요? 버스를 내려서 언덕길을 15분 이상 걸어서 올라가야 만나는 오지였습니다. 혼자서 하는 약국을 오래 비워둘 수가 없어 시내에서 일을 보고나서 빨리 가려면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나갈 때야 행선지가 분명했으나 돌아올 때는 동네에 특정한 목표 건물이 없어서 어디로 가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는 데 있었죠.
하루는 용기를 내서 택시를 타자마자 느닷없이 “교방동 육일약국 갑시다” 라고 큰소리로 말해보았습니다. “육일약국이 어디지?”라고 기사가 몰라서 물어보면 이리저리 가라고 가르쳐주면 되었기에, 처음부터 어디로 가자고 자세히 길을 가르쳐주나 일단 ‘육일약국 가자’고 큰소리부터 친 후 기사가 몰라서 물어보면 그때 가르쳐주나 요금은 마찬가지란 생각에서였지요.
마산의 변두리 4.5평 이름 없는 약국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생각에 그치면 ‘공상’에 불과하지만 몸을 움직이면 ‘행동’이 된다는 신념으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용기와 재미(?)를 느낀 저자는 택시를 탈 때마다 당당하게 “육일약국 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3년을 공들인 택시기사
가족들과 친구들은 물론, 아는 사람들에게도 택시를 타면 그런 식으로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3년을 그렇게 했습니다. 저자는 어느 날, 약국에서 가장 먼 창원의 상남동에서 택시를 타며 “육일약국 아세요?”라고 말해봅니다.
그때 젊은 택시기사가 뒷좌석으로 잠시 고개를 돌려보며 “마산·창원에서 택시기사 한달 하며 육일약국 모르면 간첩입니다”라고 대꾸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태운 승객이 그 육일약국의 주인인줄 모르는 기사는 운전을 하면서도 혼잣말을 계속했습니다. “그 약국에서 약을 잘 짓는지 왜 그렇게 유명한지 모르겠다”고... 실제로 많은 택시기사들은 그 동네에 손님을 태우고 왔다가 말로만 듣던 육일약국이 궁금해서 일부러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럴 때면 동전을 바꿔주던가, 때 묻은 장갑을 바꿔주든지 아니면 드링크를 드렸습니다. 그 시절 마산·창원의 4500대가 넘는 택시기사들이 알아서 입소문을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담주 계속(마지막 회)
8개월 동안 30번을 걸었던 전화
시사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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