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더위에 일터에서 쓰러지고
단 1분도 서 있기 힘든 성묘길
폭염 사회적 재난으로 다가와
기후위기 대응 실천만이 살길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지난 5월21일(현지시간) 멕시코 남부 타바스코주 연안. 멸종위기종인 ‘유카탄 검은짖는원숭이’ 83마리가 나무에서 사과처럼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생물다양성보전 단체 ‘코비우스’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밝힌 사인은 심각한 탈수와 고열 증세였다. 당시 멕시코는 최고기온 40~4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일터에서 떨어졌다. 지난 9일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야간작업 중이던 사내하청 노동자(41)가 32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역대 최장의 폭염경보가 이어지며 이례적인 ‘9월 열대야’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이 사업장에서는 한 달 전에도 온열질환 의심 사망이 있었다. 지난 5개월(4~8월)간 한화오션의 온열질환자는 30명을 넘었다.
폭염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기후재앙이 됐다. 지난 추석 명절 하늘의 햇빛은 꼭 우릴 태우려고 들이댄 화염방사기 같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나선 성묘는 단 1분도 서 있기 힘들 정도로 햇볕이 뜨거웠다. 온 국민이 에어컨과 그늘에 몸을 숨기고 살았던 여름이었다.
2023년 출간된 ‘폭염살인’(The Heat Will Kill You First)은 지구가 맞이한 상황을 잘 알려주고 있다. 기후 저널리스트 저자 제프 구델은 파키스탄·파리·텍사스·남극을 가로지르며 이른바 ‘지구 열탕화’ 현장을 낱낱이 기록했다. 구델은 ‘우리가 앞당겨 맞이한 것은 여름이 아니라 죽음이었다’고 참상을 토로한다. 2019년 한 해 동안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이 전 세계 5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가 겪고 있는 ‘더위’는 여름의 낭만이 아니라 지구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열’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는 지구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심장과 신장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지며 자살률이 늘어났다고 밝힌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온열질환 환자는 3.5배 늘었고 사망자는 32명에 달했다. 올해는 온열질환 감시체계가 발동된 지난 5월20일부터 현재까지 누적 환자가 3630명을 넘었으며 사망자도 34명으로 늘었다(질병관리청).
기후 전문가들은 지구가 점점 더 더워지고 있는 첫 번째 원인으로 화석연료를 꼽는다. 산업혁명 이후 250년간 석유와 석탄을 태워 대기를 이산화탄소로 꽉 채운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화석연료 기반 발전을 멈추면 30년 뒤의 기온을 바꿀 수 있지만 전 세계 화석연료 사용 비중은 82%로 여전히 높다. 더 우려스러운 사실은 ‘빅오일’ 엑손모빌이 지난 8월 발표한 ‘2050 글로벌 전망 보고서’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석유와 천연가스 투자는 필수적"이라며 2030년부터 수요가 하루 1억배럴 이상으로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에게 힘이 되는 소식도 있다. 헌법재판소가 ‘기후소송’에 대해 미래세대 권리를 옹호하는 전향적인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지난달 29일 "2050 탄소중립을 국가 비전으로 정해 놓고도 단계별 감축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환경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기후위기 대응은 국가의 책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제 국가는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폭염이라는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폭염살인’ 출간 당시 구델이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우리는 이대로 끝장인가요"였다고 한다. 그는 그때마다 이렇게 답했다. "지구가 살 만한 별이기를 바라는가? 그러면 행동하라." 그렇다. 우리에게 더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조영철 오피니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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