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동양생명 '저평가' ABL생명 '고평가' 논란
인수가 공개되자 동양생명 주가 급락…합병 시 추가 피해 우려
염가매수차익으로 자본비율 방어 노림수
우리금융그룹이 인수하기로 한 동양생명·ABL생명을 둘러싸고 금융업계 안팎에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두 생보사를 패키지로 인수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제대로 산정하지 않아 벌써부터 소액주주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추후 합병 과정에서 주주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고 노사갈등까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금융당국은 우리금융에 대한 고강도의 정기검사를 예고했다.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가격 1조5494억원…과연 적정했나
우리금융은 지난달 28일 동양생명 지분 75.34%를 1조2840억원, ABL생명 지분 100%를 2654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6월 패키지 딜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약 7주간의 실사를 거쳤고 별다른 잡음 없이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우리금융은 지분인수 사실을 알리며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인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실사 기준일인 3월 말 기준 각각 0.65배, 0.30배"라고 강조했다. 쉽게 말해 해당 비율만큼 기업을 싸게 사왔다는 얘기다.
우리금융은 두 생보사를 얼마로 평가했을까. 지분인수가를 바탕으로 두 생보사의 100% 지분가치를 따져보면 동양생명은 1조7042억원, ABL생명은 2654억원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각 PBR 0.65배와 0.30배를 적용해 장부가치를 계산해보면 동양생명이 2조6219억원, ABL생명이 8845억원이다. 이는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지난 3월 말 기준 재무제표상 자본총계인 2조5852억원, 8983억원과 비슷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존 재무제표의 자본총계와 실사를 통해 따져본 장부가치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빠른 거래를 위해 매도자 측이 산정한 재무제표를 다시 들여다보지 않고 그대로 인정했다는 것"이라며 "대신 매각이 시급한 매도자의 사정을 반영해 실제 거래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동양·ABL생명 최대주주인 다자보험이 현재까지 두 회사에 들인 돈은 약 2조원이다. 다자보험(당시 안방보험)은 2015년 동양생명을 1조1600억원에 인수했고 이후 5280억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ABL생명은 35억원에 사들여 두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3080억원을 투입했다. 우리금융이 두 생보사를 인수하는 데 1조5494억원을 들인 것과 단순비교하면 다자보험이 4500억원 안팎(배당 등 제외)의 손해를 보고 매각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에 대해 ABL생명은 고평가, 동양생명은 저평가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ABL생명의 올해 1분기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은 114.4%로 금융당국 권고치(150%)에 훨씬 못 미친다. 킥스는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여력을 나타내는 건전성 지표다. ABL생명이 킥스를 150%로 맞추기 위해서는 약 5000억원을 추가 투입해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ABL생명은 과거 고금리 저축성 보험을 많이 팔아 금리 역마진에 따른 자금 부담도 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ABL생명의 사정을 고려하면 우리금융이 오히려 돈을 받고 사야 했을 정도"라며 "애물단지인 ABL생명 가격을 높게 쳐준 만큼 동양생명을 할인하는 이면의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생명 '저평가' ABL생명 '고평가'…소액주주 피해 커진다
문제는 우리금융의 이런 거래방식으로 동양생명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동양생명은 코스피 상장사로 우리금융이 확보한 지분을 제외한 나머지 25%가량은 소액주주가 보유 중이다. 지난 5월31일 5000원이었던 동양생명 주가는 우리금융 인수설 등에 힘입어 8월27일 장중 8900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튿날 우리금융이 동양생명 인수가를 공개하자 6980원으로 고꾸라졌다. 이후에도 주가가 꾸준히 내려 이번 달 6일 종가기준 6050원까지 떨어졌다. 소액주주들은 수입보험료 기준 국내 생보사 6위인 동양생명의 자산가치와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고려할 때 우리금융이 책정한 지분가치가 합리적이지 않아 주가가 하락했다고 성토하고 있다.
소액주주 피해는 향후 동양·ABL생명 합병 과정에서 더욱 커질 수 있다. 현재 업계에서는 두 생보사를 합병하면 ABL생명의 낮은 킥스 문제를 해소할 수 있고 서로 겹치는 사업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합병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합병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우리금융이 동양생명 소액주주 지분을 모두 사들여 완전자회사로 만든 뒤 ABL생명과 합병하거나, 현재 상황에서 합병한 뒤 소액주주들에게 합병법인의 지분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만약 합병이 추진되면 저평가된 동양생명의 기업가치와 낮아진 주가가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고 이는 어떤 방식의 합병이든 소액주주의 피해로 연결된다.
합병은 노사갈등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현재 동양·ABL생명 내부 직원들은 합병 시 고용승계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노심초사다. 동양·ABL생명 노조는 최근 우리금융에 인수 완료 후 양 사 직원들의 고용관계 유지와 양 사 합병 시 이에 따른 인적·물적 구조개편에 대해 노조와 합의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투쟁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동양생명 노조 관계자는 "겉으로는 고용승계를 약속하더라도 조직개편을 이유로 임원 보직을 없애고 우리금융지주 쪽 낙하산 인사가 대거 들어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직원이 많다"며 "ABL생명의 경우 혹여 우리금융에 찍힐까 봐 벌써부터 휴가조차 쓰지 못하는 임직원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염가매수차익으로 자본비율 방어 노렸나…금융당국 "생보사 인수리스크 살필 것"
일각에서는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을 패키지로 인수한 이유로 약 8000억원의 염가매수차익을 노린 것이란 의견도 있다. 염가매수차익은 인수한 기업의 순자산보다 지불한 인수가격이 낮을 때 발생하는 장부상 이익이다.
염가매수차익이 중요한 건 우리금융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CET1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중 하나로 위기 시 금융사가 지닌 손실흡수 능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통상 기업 인수 시 CET1이 낮아지지만 우리금융처럼 PBR 측면에서 저렴하게 인수하면 CET1 하락폭이 크게 줄어든다.
현재 우리금융의 상반기 기준 CET1은 12.03%로 5대 금융지주 중 가장 낮다. 국내 금융지주는 CET1을 13% 이상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관리 중이다. 일정비율(통상 13~13.5%)을 초과하면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주주환원 정책에 활용하고 있다. 우리금융은 동양·ABL생명 실사가 한창이던 지난 7월25일 상반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CET1 목표치를 12.2% 이상으로 제시했다. 2025년 말까지 이를 12.5%까지 끌어올려 주주환원율을 35%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도 했다. 당시 이성욱 우리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보험사를 인수하게 되면 염가매수차익이 발생할 것으로 본다"며 "염가매수차익은 자본비율에 도움 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금융이 염가매수차익으로 방어하는 CET1을 38bp(1bp=0.01%포인트) 정도로 보고 있다. 조아해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 관련 영향(-46bp)과 염가매수차익(38bp) 고려 시 CET1 하락폭은 8bp로 추정한다"면서 "하반기 우리금융 이익과 위험가중자산(RWA)을 2%로 단순 가정하면 연말 CET1은 12.3%로 추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우리금융이 염가매수차익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염가매수차익을 실적에 반영하려면 금융당국의 승인이 필요한데 최근 우리금융에 대한 금융당국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우리은행의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과 보고 지연에 대해 현 경영진을 겨냥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는 지난 4일엔 우리금융의 생보사 인수에 대해 "당국과 소통이 전혀 없었고 인수 리스크를 제대로 반영했는지 걱정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우리금융에 대한 정기검사를 10월로 앞당겨 실시할 계획이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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