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이후 의대 운영에 확정된 게 아무것도 없어요. 학년별로 몇 명을 가르쳐야 할지조차 파악이 안 돼요. 이런데 의대 평가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나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인증 평가를 받게 된 수도권 증원 의대 학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를 길러내는 의과대학은 의대생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정기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정부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을 법정 위탁 기관으로 지정해 이 평가를 수행한다. 평가에서 불인증된 의대는 관련 법에 따라 정원 감축 및 모집 정지, 재학생 의사국가고시 응시 불가 조치를 받으며, 상황이 심각하면 폐교될 수도 있다. 실제로 서남대 의대가 의평원 불인증으로 폐교됐다.
내년도 정원이 늘어난 30개 의대는 이와 같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인증 평가를 올해부터 6년간 매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증원 의대들은 하나같이 운영 계획을 어떻게 세우고 평가를 받아야 할지 한치 앞을 못 내다보고 있다. 평가 대상 의대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기자와 통화한 의대 학장은 의료 사태가 예상보다 심각해지자 정부가 우왕좌왕하면서 정상적인 의대 교육 자체를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가장 기본적인 증원 규모부터 정부가 계속 말을 바꾸는데 교육 계획을 어떻게 세우냐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정부는 사직 전공의를 불러들이기 위해 의대 정원 재조정 여지를 만들었다. 지난달 정부는 "전공의가 의료계와 함께 의견을 내면 2026학년도 이후 정원 추계를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증원 의대는 학생 수에 맞춰 교육 여건을 확충해야 인증받을 수 있다. 정부의 이 발표대로라면 의대 정원은 2025학년도, 2026학년도, 또 그 이후 계속 바뀔 수 있다. 현재로선 해마다 정원이 몇명이 될지 예측할 수도 없다. 의대 측은 정부가 이런 식으로 임기응변하는 한 교육 시설 투자 등의 계획을 제대로 세울 수 없고, 그러면 의평원 인증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상황은 증원 의대 전체의 문제이다. 지난달 30일 열린 의평원 '주요변화평가 계획 설명회'는 증원 의대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지역 의대 관계자는 "의평원 평가 기준을 맞추기 위해선 내년 신입생 선발을 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 지방 사립대는 해결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증원 의대의 미래가 불확실해지면 평가받는 의대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다. 의대 입학을 준비하는 수험생, 현재 재학생 등이 모두 직접 영향을 받는다. 앞으로 우수한 의사가 제공할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하는 환자도 당사자다.
정부는 증원 발표 이후 의학 교육 질 저하를 우려하는 의료계에 대해 "걱정 없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혔다. 하지만 의평원 평가가 코앞에 닥치자 당황해서 의평원 이사회 구성을 변경하고 인증에 대해 사전 심의를 하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할 일은 의평원 평가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다. 의대가 안정적으로 학생을 교육할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없애 주는 것이 정부의 임무이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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