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부터 동성 커플 33건 혼인신고서 제출
건보 판결 이후 용기 내는 성소수자 커플 늘어나
동성혼 인정 마중물 기대감↑…"판결이 결정타"
지난 18일 대법원이 동성 커플의 상대방을 사실상 부부처럼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이에 성소수자들은 잇달아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23일 연합뉴스는 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 19일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는 동성 커플 '삼식(가명·34)'씨와 그의 연인에 대해 보도했다. 이들은 2013년부터 11년 동안 교제 중이며, 동성 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최근 대법원 판결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앞서 2022년 3월 지자체의 가족관계 등록 전산시스템이 정비되면서 행정 절차상으로는 성별에 상관없이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동성 부부가 신고서를 내면 법원은 '현행법상 수리할 수 없는 동성 간의 혼인'으로 생각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2년 3월부터 지난달까지 전국 지방자치에 접수됐으나 수리되지 않은 동성 간 혼인신고는 총 33건으로 집계됐다.
삼식씨는 "오랫동안 만나 사랑해도 한국에서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사실에 늘 마음이 불편했다"며 "투명인간 취급만 당하다가 대법원 판결 생중계를 보는데 조금이나마 인정받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왈칵 났다"고 벅차오른 심정을 전했다. 비록 법원이 동성혼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판결이 동성혼 인정의 마중물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혼인신고서를 내도 수리가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런데도 삼식씨는 혼인신고서를 제출할 결심을 굳혔다고 밝혔다. 그는 "(판결이 나온 다음 날) 구청에 혼인 신고서를 제출하기로 결심을 굳혔다"며 "이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지만 이번 판결이 결정타가 됐다. 지난해 4월 미국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까지 마쳤으나 한국에서는 혼인신고를 제출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떳떳하게 결혼할 권리를 얻어내기 위해 머릿수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라며 "결혼을 원하는 성소수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보여줘 동성혼 법제화의 입법 근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기증받은 정자로 시험관 수술을 받아 국내 레즈비언 부부 중 처음으로 아이를 낳은 김규진(33) 씨도 이번 건보 판결에 대해 환호했다. 그는 "이번 판결을 통해 언젠가 우리 부부 모두 딸 '라니'의 법적 어머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라며 "누군가 벽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우리의 존재는 기록에도 잡히지 못한다. 주변의 성소수자 부부들을 모아 함께 다시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김 씨는 2020년 서울 종로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시도했으나 끝내 실패한 전적이 있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 18일 성소수자인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사실혼 관계인 동성 배우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소 씨는 동성 동반자 김용민 씨와 지난 2019년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김 씨의 피부양자로 등록했으나 같은 해 10월 공단은 소 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지역가입자로서 보험료를 부과했다.
이에 소 씨는 실질적 혼인 관계임에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부인하는 것은 피부양자 제도의 목적에 어긋난다며 행정 소송을 냈다. 1심은 소 씨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2심을 심리한 서울고법은 작년 2월 공단의 처분이 동성 부부를 이유 없이 차별했다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공단이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별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해 위법하다고 짚으며 "피부양자제도 본질에 입각하면 동성 동반자를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 이유를 밝혔다.
고기정 인턴 rhrlwjd031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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