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면담을 요청하자 '아침 7시에 회의가 있어서 6시30분 밖에 시간이 안 되는데 그때 올 수 있냐'고 하더라. 그래서 '좋다'고 하고 우리 팀이 약속시간 1시간 전인 새벽 5시30분부터 기다려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 나중에 들었는데 이 관계자가 공식 석상에서 그 일을 언급하며 '한국 사람들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하더라. 이 말을 들으니 '이제 조금 (체코 측) 마음을 샀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체코 원전 수주전 중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은 장면이다. 한수원은 올해 4월 말 체코전략공사에 최종 입찰서를 제출했다. 황 사장이 소개한 일화는 체코전력공사가 한수원과 프랑스전력공사(EDF)의 입찰서를 막판 검토하던 시기로, 각국 정부와 관련 기업이 총력전을 벌이던 6월 중순이었다.
한수원은 '한국·체코 원자력 및 문화교류의 날' 행사를 열고 양국 110개 기업과 주요 관계자 400여명을 초청했다. 이 행사에서 참석한 체코 정부 고위 관계자가 한수원과의 과거 사례를 소개하며 '대단한 한국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황 사장은 "정말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정말 진정성을 다해서 추진하는 수밖에 없었다"며 "다만 당시 '저들이 우리를 믿기 시작하는구나'라고 느꼈다"고 회고했다.
유럽연합(EU) 원자력동맹을 주도하고 있는 경쟁국 프랑스는 체코와 같은 유럽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며 '유럽 안방을 내줄 수 없다. 우리가 남이가' 전략을 취했다. 팀코리아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사업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온타임 위드인 버짓', 즉 정해진 예산 내 적기 시공을 강점으로 맞섰다. 황 사장이 소개한 당시 일화는 체코 측이 '부지런한 한국을 믿을 수 있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한 단면인 셈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체코 정부가 사업 규모를 원전 1기에서 최대 4기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올해 1월을 수주전의 판도가 바뀐 시점으로 꼽았다. 체코 정부는 올해 1월 말 1기 규모였던 원전 건설계획을 4기로 대폭 확대하는 동시에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전격 탈락시켰다. 이를 두고 당시에는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1기 정도는 비(非)유럽 국가인 한국이 딸 수도 있겠다'는 분위기가 '4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안 장관은 당시를 "우리가 '아예 초장에 탈락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 고비를 넘기면서 2파전으로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된 게임의 모드가 바뀌게 된 시점"이라고 말했다. 체코 정부는 지난 17일 신규원전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수원을 선정했다. 결과적으론 사업 규모가 최대 4기로 커진 것이 팀코리아의 무기인 '가격 대비 성능'을 부각시킨 셈이다.
원전수출의 결실을 보기 위한 과제는 아직 남아있다. 두코바니 원전 5·6호기 사업비는 1기당 약 2000억코루나(약 12조원)로 총 4000억코루나(약 24조원) 규모다. 한수원과의 계약 금액은 향후 협상을 거쳐 최종 결정된다. 체코 정부는 전력수요와 이번 두코바니 원전사업 진행상황에 따라 테믈린 3·4호기 건설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추가 원전의 우선협상대상자도 한수원이다. 체코와 한국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길 응원한다.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