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밥' 잘 챙겨 드시죠?"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만난 한 지인이 물었다. 그는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니라 "실제 밥을 얼마나 먹는지 궁금하다"며 둘러앉은 한명 한명에게 같은 질문을 재차 건넸다. 다행히 참석자 모두 밥을 먹기는 했다. 하지만 3명은 월~금요일 닷새간 공깃밥 1~2그릇 먹는 데 그쳤다. 평소 식사를 잘 챙겨 드신다는 한명만 네 끼 밥을 먹었다고 했다. 이날 식사 장소는 중국집이었는데 아무도 덮밥이나 볶음밥은 시키지 않았다.
최근 쌀 판매가 줄어드는 추세는 더욱 뚜렷해졌다. 올해 1분기 농협과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의 쌀 판매량은 전년보다 4만t(-12.9%), 평년 대비 3만5000t(-11.4%) 줄었다. 농협은 농가가 생산한 쌀을 수매해 임도정공장 등에 쌀을 판매한다. 농협과 RPC 판매량이 줄어든 만큼 전체 쌀 소비량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파른 수요 감소세를 보여주는 단면인 셈이다.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쌀 소비 감소세의 반전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쌀 소비량은 지난 30년 새 반토막이 났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4㎏으로 30년 전인 1993년(110.2㎏)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1인당 하루 소비량은 154.6g. 시중에 판매되는 즉석밥(200~210g) 한 개보다도 적다. 급격한 수요 감소에도 생산량은 지난 30년간 22% 줄어드는 데 그치면서 매년 수급불균형에 따른 쌀값 불안이 반복되고 있다.
국회는 21대에 이어 22대에도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매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양곡법 개정안을 두고 부딪치고 있다. 야당은 지난해 4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재추진했고, 22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야당의 양곡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해 정부도 총력 저지에 나서고 있다. 정부 의무매입 시 부작용을 강조하는 한편, 대안으로 가격하락 등에 따른 농가 경영위험을 줄이기 위해 쌀을 포함하는 수입안정보험을 추진하기로 한 상태다. 양곡법 개정 추진에 맞서 쌀값 안정을 위한 사후 대응책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전략작물직불제 등 쌀 재배면적을 줄여 공급량 자체를 감소시키고, 가공산업 및 가루쌀 산업 육성 등 쌀 소비량을 늘려 수요를 증대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효과도 보고 있다. 2023년산 쌀값 하락에 대응해 재배면적 감축을 추진해 당초 목표(69만9000ha)보다 1만ha 이상을 추가 감축했다. 쌀 5만t에 해당하는 규모다. 가루쌀 지원사업을 통해 쌀로 만든 과자, 빵, 라면, 우유, 튀김가루, 고추장 등 쌀 가공식품이 출시됐거나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양곡법 개정안 저지를 위한 사후 대응책에 치중할수록 이 같은 방안에 대한 추진 동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자연재해와 가격하락 등 경영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쌀 농가의 소득·경영 안전망 구축은 필요하다. 다만 공급과잉을 그대로 두고 그 결과에 대응하는 것보다 이에 앞서 재배면적을 줄이고 소비를 늘리는 정책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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