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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대체율 안 바꿔도 국민연금 '더 받는' 개혁 가능"[이슈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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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연금개혁을 두고 정치권의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여야 절충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민의힘은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을 신연금과 구연금으로 이원화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지난 4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두 방안 모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며 “미래 세대에 천문학적인 빚더미를 물려주거나 연금개혁의 고통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야 절충안에 대해서는 “부족한 점이 있어서 개혁하자는 건데, 빚더미를 줄여주진 못할망정 개혁이란 이름을 앞세워 빚을 늘리는 모양새”라며 “소득대체율을 0.1%포인트만 올려도 개혁안 아닌 ‘개악’안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신 기초연금 등 세금 투입으로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평균 수명 증가에 따라 월간·연간 연금 지급액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재정안정을 달성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윤 위원은 제1~5차(2003~2023)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에 모두 참여한 연금 전문가다. 1997년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부터 연금개혁 논의의 전 과정에 함께 했다. 연금의 재정안정을 중시하는 전문가로 꼽힌다.


"소득대체율 안 바꿔도 국민연금 '더 받는' 개혁 가능"[이슈인터뷰]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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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어떤 상태인가.

▲연금 재정이 굉장히 나빠지고 있다.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를 보면, 현 제도(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면 적립금은 2040년까지 증가해 최대 1755조원에 이르고 2055년 고갈된다. 이때 사라지는 돈은 1755조원의 적립금만이 아니다. 기금운용 수익금과 새로 들어오는 보험료도 없어진다. 둘을 합친 값이 약 1000조원이니 연금이 고갈되면 2755조원이 증발하는 셈이다.


소득대체율은 현행(40%)을 유지하되 보험료율은 6%포인트 오른 15%로 설정해도 재정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기금소진 시점이 2071년으로 16년여 미뤄지는데, 안타깝게도 이 계산값마저 실제보다 낙관적이다. 당시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2030~2040년부터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이 1.21로 반등한다고 가정했다. 지금 합계출산율이 0.6~0.7 수준인데 수년 내 2배가량으로 늘어나는 게 가능할까.


-국회가 제시한 개혁안으로 연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여야가 거론한 절충안대로 보험료율·소득대체율을 각각 13%와 44%로 올리면 암묵적 부채가 급증한다. 미래 세대에 더 이상 부채를 떠넘기지 않는, 장기 재정균형 수준의 보험료율을 수지균형 보험료율이라고 한다. 소득대체율이 44%일 때 수지균형 보험료율은 약 22%다. 절충안(13%)보다 9%포인트 높은 값이다. 반대로 말하면, 미래 세대에 연간 9%포인트에 달하는 보험료 빚더미를 추가로 물려줄 게 뻔한 것이다. 부족한 점이 있어서 개혁하자는 건데, 빚더미를 줄여주진 못할망정 개혁이란 이름을 앞세워 빚을 늘리는 모양새다. 소득대체율을 0.1%포인트만 올려도 개혁안 아닌 ‘개악’안이다.


-국민연금 월평균 수령액이 60만원대다. ‘받는 돈’을 늘릴 방법은 없나.

▲국민연금의 소득 상한선을 높이면 된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의 기준소득월액(연금액을 산정하기 위해 가입자가 신고한 소득월액) 상한액은 약 600만원이다. 월급을 600만원 이상 받더라도 상한액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낸다는 뜻이다. 이는 공무원연금 등 다른 공적연금보다 상당히 낮다. 국민연금 기준소득월액을 공무원연금(860만원) 수준으로 올리면 소득대체율 40%로도 적지 않은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저소득층은 어떡하나. 소득대체율을 올려 노인 빈곤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연금정책과 사회정책을 분리한 1998년의 스웨덴이 좋은 사례다. 연금정책은 낸 만큼만 받게 해서 지속 가능성을 확보했고, 사회정책은 세금 투입으로 취약계층에 최소한의 노후생활을 보장했다. 한국도 선별적 제도인 기초연금 등으로 노인 빈곤에 대응해야 한다. 노인 빈곤의 핵심이 소득·자산 양극화기 때문이다. 상위 10% 부자 노인은 고도성장의 수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유하지만, 하위 25%는 모든 연령층에서 가장 비참한 집단이다. 때문에 보편적 복지인 국민연금으론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소득대체율 인상은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할 우려도 있다. 1~10분위의 예상 가입기간 분석 결과를 보면 가난한 1분위는 19.3년에 그친 반면, 부유한 10분위는 33.9년으로 도출됐다. 국민연금은 가입기간이 길수록 수령액이 증가하는 구조기 때문에 소득대체율 인상에 따른 혜택은 부유층이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즉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오늘 소득대체율을 상향해도 그 효과가 100% 나려면 약 40년이 걸린다. 지금 가난한 노인이 당장 혜택을 얻을 순 없다는 뜻이다.

"소득대체율 안 바꿔도 국민연금 '더 받는' 개혁 가능"[이슈인터뷰] 신승룡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부연구위원이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KDI와 한국경제학회 주최로 열린 '국민연금 개혁 방향 토론회'에 참석해 ‘완전적립식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이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재정안정을 위해 신연금과 구연금을 나누자는 KDI의 안은 어떻게 보나.

▲세대 간 형평성이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KDI의 제안은 연금개혁 시점부터 들어오는 보험료를 신연금 계정에 새로 적립하자는 것이다. 개혁 이전에 낸 구연금 보험료는 따로 운용하고,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구연금에서 재정부족이 발생하면 국고 투입으로 해결하자는 게 KDI의 주장이다. 이는 노년 세대에 면죄부를 준다. 구연금의 재정부담을 나라에서 갚으면 기존 수급자나 수급 개시를 앞둔 세대는 고통을 부담하지 않으니 “고맙습니다” 하게 된다. 반대로 젊은 세대는 미래에 못 받을지도 모르는 연금 제도를 위해 홀로 2~3배 더 부담해야 하는데, 좋다고 하겠나.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할까.

▲연금개혁 방향성은 최소 30년, 최대 70년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걱정을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 핀란드식 기대여명계수를 받아들이자. 평균 수명이 증가하면 자동으로 월간·연간 연금 지급액이 줄어드는 방식이다. 다만 국민연금공단이 수급자 1명에게 평생 동안 지급할 총 연금액은 동일하다. 기대여명계수를 적용하면 노년 세대도 연금개혁의 고통을 함께 분담하는 동시에 재정안정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다. 평균 수명 증가가 재정 불안정의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수급자가 약 20년간 연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현재 연금 수령기간이 25~30년으로 늘었다.


또한 앞서 언급한 1825조원의 암묵적 부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암묵적 부채 규모가 1825조원에서 멈추거나, 늘더라도 조금 증가해야 젊은 세대가 희망을 갖지 않겠나. 소득대체율을 그대로 두면서 빚더미를 더 늘리지 않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정부와 국회에 바라는 점이 있나.


▲축구 경기를 보면 전반전과 후반전 외에도 인저리 타임(정규 시합 시간 이후 주심의 재량에 따라 추가로 허용하는 시간)이 있다. 연금개혁으로 기금소진 시점을 5~6년 늦춘 건 전반전에서 1~2골 넣은 상황과 같다. 아직 후반전은 물론 그 후 인저리 타임도 남았다. 평균 수명이 예상보다 훨씬 늘어났으니 인저리 타임이 얼마나 길어질지를 중요하게 고려하면서 연금개혁에 임해야 한다. 이때 연금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국민에게 공유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의 암묵적 부채는 오랜 요구와 압력 끝에 겨우 공개됐다. 연금개혁 관련 회의록을 올리고, 공무원연금도 재정추계 결과 값을 발표해야 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1961년생으로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A&M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및 제도발전위원회 위원, 공무원연금 재정계산위원회 위원, 기초노령연금 재정추계위원장, 한국연금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명예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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