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주택은 일반주택과 달리
짓고 난 이후가 훨씬 중요
식당·헬스장 폐허 돼
노인 식사와 건강, 여가 관리가 주거정책 초점 돼야
공급보다 안정적 운영 절실
2009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최고급 노인복지주택이 들어섰다. "실버타운을 늘리겠다"며 정부가 노인복지주택 분양제를 허용하던 때였다. 한 채(전용면적 165㎡)당 무려 16억원에 달했다. 당시 시세로는 파격적으로 높은 가격이었다. 내부 인테리어 자재는 모두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가져왔다. 일반 주택보다 층고도 훨씬 높게 잡았다. 옆에는 유명 병원과 비싼 요양원까지 들어왔다.
유명세는 10년을 채우지 못했다. 2017년 재단 이사장이 부도를 내면서 이 주택의 모든 것은 달라졌다. 노인들이 이용하던 커뮤니티 건물동의 소유권은 엉뚱한 사업자에게 넘어갔다. 현재 소유주가 관리에 완전히 손을 떼면서 수영장과 헬스장, 골프장, 영화관, 도서관, 레스토랑이 있던 커뮤니티 시설은 완전히 폐허가 됐다. 편한 여생을 보내려 집까지 팔고 입주했다가 약속했던 서비스를 하나도 이용할 수 없게 된 노인들은 절망했다.
날벼락을 맞은 입주 노인들은 젊은이들한테 본인들이 입주했을 때보다 싼 값에 집을 팔아넘겼다. 세대마다 4억~5억원씩 손해를 본 것은 예삿일이었다. 현재 이곳은 무늬만 노인복지주택일 뿐 사실 누구나 들어가 살 수 있는 일반 주택이나 다름없다.
4년 전 여기 살던 어르신에게 집을 샀다는 한 입주민은 "단지 안에 ‘폐가’ 같은 커뮤니티 시설이 있다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분당의 다른 아파트와 달리 여기만 가격이 떨어져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처음에는 노인들만 살았지만 지금은 젊은 사람들까지 살고 있고 운영자도 달라졌다. 공무원들조차 ‘여긴 노인주택이다. 아니다 일반주택’이라고 핑퐁 게임만 하면서 자기 관할이 아니라고 피하는 상황"이라며 "누구도 흉물이 된 커뮤니티 시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노인복지주택은 짓는다고 끝이 아니다. 짓고 난 후가 훨씬 중요하다. 어르신들이 집 팔고 땅 팔아 수억 원대 보증금을 마련하고, 매달 월 임대료를 내면서도 이곳에 들어오려고 하는 이유는 적절한 돌봄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다. 이지희 수원여대 사회복지과 겸임교수는 "노인복지주택은 단순히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입소자들의 식사와 건강, 여가 생활까지 관리해야 하는 점이 일반 주택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서비스 운영이 책임지고 이뤄지는 데 초점을 맞춰야 노인주거정책도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강진형 기자 ayms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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