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우리 주위에는 넉넉한 공간이 있다. 지평선이 우리 코앞에까지 와 있진 않다. 울창한 숲도, 호수도 어느 정도 떨어져 있지만 대신 자연에서 빼앗아 와 우리 것으로 만들어 울타리를 두른 익숙한 개간지가 있다. 그런데 나는 무슨 연유로 사람들이 버린 이 광활한 땅, 몇 제곱킬로미터나 되는 인적 드문 숲을 차지하고 있을까? 가까운 이웃이라고 해봐야 1.6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고,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는 한 집 주위에 인가는 보이지 않는다. 숲으로 선이 그어진 지평선도 다 내 차지다. 한편으로는 멀리 철로가 호숫가 옆을 지나는 풍경이 보이고, 다른 편으로는 숲속의 길을 따라 세워놓은 울타리가 보인다.
하지만 이곳은 대초원만큼이나 고적하다. 여기는 뉴잉글랜드이지만 아시아나 아프리카 같다. 말하자면 나에겐 나만의 해와 달과 별들, 나만의 작은 세상이 있는 셈이다. 밤에 우리 집을 지나치거나 문을 두드리는 나그네도 없어서 마치 내가 세상 최초나 최후의 인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봄에는 이따금 메기를 잡으러 밤낚시를 오는 마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둠을 미끼로 마음의 호수에서 낚은 고기가 더 많았던 모양이었다. 대개 빈 바구니를 들고 금방 물러나 '세계를 어둠과 나에게'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밤의 어둠이 사람들의 발길에 훼손되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어둠을 꽤 두려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녀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기독교와 양초가 널리 보급되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자연 속에서 가장 달콤하고 다정하며, 가장 순수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친구를 발견할 수 있다. 딱하게도 사람을 몹시 싫어하거나 심한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자연에 살면서 모든 감각을 고요히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해로운 우울증이 찾아올 수 없다.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폭풍우도 '바람의 신'의 음악으로 들릴 뿐이다. 그 무엇도 소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에게서 통속적인 슬픔을 자아낼 순 없다.
-<어떤 고독은 외롭지 않다>, 재커리 시거 엮음, 박산호 옮김, 인플루엔셜, 1만65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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