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감독 영화 '나의 올드 오크'
팍팍한 삶 분노, 난민에게 향해
한국 사회가 난민 멀리하는 근원이기도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의 올드 오크'에서 영국 북동부 폐광촌 주민들은 잔뜩 화가 나 있다. 마을에 터를 잡은 시리아 난민들을 못마땅해한다. "내가 인종차별을 하려는 게 아니라 학교 꼴이 말이 아니야. 갑자기 애들이 늘었잖아. 걔네 탓은 아니지만 영어 못하는 애도 많아. 진도가 안 나가." "자기(대도시 사람)들은 옆에 살기 싫으니까, 버스에 실어서 우리한테 던지는 거야. 난민, 이민자… 좋다 이거야. 그런데 우리도 가진 게 없는데 알지도 못하는 것들과 나누라고? 불평하면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고. 아주 진절머리가 나."
로치 감독은 1960~1970년대 연출한 영화에서 이들의 아버지들을 영웅적 노동자상으로 그렸다. 노동 자체에 대한 찬양은 아니었다. 임금인상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투쟁을 기렸다. 뜨겁던 사회운동은 영국이 1990년대에 탈산업화를 겪으며 사그라들었다. 대규모 실업 사태가 벌어지면서 노동조건이 다시 악화했다. 로치 감독은 이 또한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았다. '외모와 미소(1981)'에서 심화한 실업 상황을 심도 있게 다뤘다. '하층민들(1991)'에선 실업문제와 규제 완화로 노동자에게 억압이 가중된 현실을 묘사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었다. 환경 개선을 요구하다 해고된 동료들을 애써 외면했다.
침묵의 대가는 열악이다. '나의 올드 오크' 속 주민들 삶은 하나같이 팍팍하다. 부동산 가격은 곤두박질쳤고, 정부와 지자체 지원은 씨가 말랐다. 그렇게 쌓인 분노와 비애는 기부금과 물품을 지원받는 시리아 난민에게 향한다. 인신공격과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마을의 영광과 추락을 모두 경험한 TJ 발렌타인(데이브 터너)은 파국을 우려한다.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면서 우리보다 약자를 비난해. 언제나 그들을 탓해. 약자들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게 더 쉬우니까."
한국 사회가 난민을 멀리하는 근원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1997년 불어닥친 외환위기와 그 뒤 전개된 산업구조 전환이 노동시장은 물론 소득분배 구조를 악화시켰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여러 계층에 골고루 배분되지 못하고 소수 상위층에 집중된다. 대다수 인구의 경제적 격차가 넓어지는 추세다. 정부와 지자체는 그렇게 생긴 틈을 좀처럼 메우지 못한다.
적지 않은 이들은 '단일 민족 국가'라는 개념을 앞세워 난민 수용을 반대한다. 하지만 우리 민족사는 섞임과 넘나듦의 연속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북방 유목민족의 후예인 백정이 조선 초기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유목민족은 고려 때부터 연이어 한반도로 이주해왔다. 예컨대 백정의 주력인 거란인은 고려와의 전쟁(993~1018) 동안 투항하거나 포로로 잡힌 사람이 수만 명에 달한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07년 한국 정부에 다민족 성격을 인정하고, 인종차별을 막아달라고 권고했다. 이를 차치하더라도 로마, 당(중국), 몽골, 미국 등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바로 다원적이고 관용적인 자세로 제국을 이뤘다는 점이다. 인종, 종교, 민족 등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에 세계적 패권을 휘두른 게 아닐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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