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1억원 배상하라"
1940년대 일본 군수기업인 후지코시에 강제동원됐던 근로정신대 피해자들도 회사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앞서 미쓰비시중공업이나 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법원은 한일간 청구권협정 체결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으며,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 사유가 존재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25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고(故) 김옥순 할머니 등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나 유족 등 5명이 일제강점기 때 군수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각 1억원의 손해배상과 지연이자를 청구한 소송 상고심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과 이 사건 변론종결일 이후의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1928년 설립된 후지코시는 태평양전쟁 당시 12∼18세 한국인 소녀 1000여명을 일본 도야마 공장에 끌고 가 혹독한 노동을 시켰다. 이번 소송의 원고 5명도 12~15세의 어린 나이에 본인의 의사에 반해 근로정신대에 동원되거나, '공장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고 대가를 받고 일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근로정신대에 지원했다.
하지만 이들은 군대식 훈련과 매일 하루 10∼12시간의 노동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급여는 받지 못했고, 열악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외출이 제한되고 감시당했다.
피해자들은 2003년 후지코시를 상대로 도야마 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재판소는 한일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도 2011년 이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하지만 2012년 5월 한국 대법원이 신일본제철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없고, 일본 법원 판결의 국내 효력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자 이후 국내 법원에 다시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이와 같은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후지코시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불법행위 종료일인 1945년경 무렵부터 이 사건 변론종결일인 2016년 9월 21일까지 71년 이상의 장기간이 경과하고 통화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겼으며, 그와 같이 변동된 사정까지 참작해 위자료 액수를 결정했으므로, 이 사건 변론종결일 이후의 기간에 대해서만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할 것"이라며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의 지연손해금 청구 부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어진 항소심은 앞선 신일본제철 상대 소송의 최종 결과를 기다렸다. 결국 2018년 10월 대법원은 최종 승소 판결을 했고, 4년간 기다린 항소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후지코시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날 대법원은 쟁점이 유사한 2건의 사건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놨다.
이 중 외국재판 승인 문제가 쟁점이 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고 등을 비롯한 근로정신대원 중 일부가 일본에서 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확정됐다고 하더라도, 위 일본 판결이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 및 '여자정신근로령'을 한반도와 원고 등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이상, 이러한 판결 이유가 담긴 위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므로, 우리나라에서 위 일본 판결을 승인해 그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한 원심 판단에 외국재판 승인요건으로서 공서양속 위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례를 위반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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