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지방기관 작성한 관련 문서 발견
헛소문 믿는 군중에 “몽매한 무리” 비판도
일본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이 학살된 사실에 관한 새로운 공문서가 나왔다.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학살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이니치신문은 25일 “언론인 와타나베 노부유키씨가 방위성 방위연구소 사료실에서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 40여 명이 살해됐다고 기록된 '간토지방 지진 관계 업무 상보'를 찾아냈다”고 보도했다.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간토(關東) 지방에 일어난 대지진과 이에 수반해 발생한 학살사건을 뜻한다. 일본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 9만9331명, 행방불명 4만3476명 등의 큰 피해가 발생했다.
조선인 학살은 간토대지진 사흘 뒤인 1923년 9월 4일 경찰관들이 조선인 200여명을 사이타마현 우라와에서 후카야·혼조 경찰서 방면으로 이송하던 중 일어났다.
일본 육군과 경찰은 지진을 이용,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날조된 유언비어를 퍼뜨려 무고한 조선인 수천명을 학살했다.
지난 9월 가나가와현 학살 자료를 분석한 서적이 출간되고 사이타마현 학살 정황이 담긴 기록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조선인 학살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매번 구체적인 언급과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번에 와타나베씨가 발견한 문서는 육군 지방기관인 구마가야연대구사령부가 작성한 것으로, 1923년 12월 15일에 상부 기관인 육군성에 제출됐다. 당시 구마가야연대구사령부는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 서부 지역에서 징병과 재향군인 관리를 담당했다.
해당 문서는 “해가 저물자 살기를 품은 군중이 낮에 이동하지 못한 조선인 40여명을 모조리 살해했다”고 기록했다. 또 당시 사건을 ‘선인(鮮人·조선인의 멸칭) 학살’, ‘불상사’, ‘불법행위’로 표현했다.
이어 “조선인 습격이나 방화도 없었고,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사실도 듣지 못했다”며 당시 일본 사회에 떠돈 조선인 습격·방화 소문이 적어도 해당 지역에서는 사실이 아니었다는 점을 기술했다.
재향군인회 구마가야지부장은 조선인 관련 헛소문에 현혹된 사람들을 “사리 분별을 못 하는 몽매한 무리”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또 사령부는 밤에 학살이 벌어졌다는 점에 주목, “야간에 조선인을 이송하면 어두운 곳에서 사람이 살해되는 참상을 보게 될 수 있으니, 밤을 피할 필요가 있다”고 참고 의견을 전했다.
와타나베씨는 “조선인 학살이 일어난 것은 확실하나, 집단적인 정신 이상이나 권력의 탄압 등 기존 견해로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다른 관점을 통해 전모를 밝힐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최승우 기자 loonytun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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