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심층원인 및 대책연구>②
아이 안 낳는 청년들, 배경엔 불평등한 연공제
"50대 임금 자제, 불평등 완화해야" 주장도
부모 돈 있어야 결혼…전문가도 "선 넘었다"
"정책만 치중…구조개혁, 대타협이 더 중요"
“저는 은행에 근무하다 보니까 신혼부부를 누구보다 많이 보는 사람인데 (...) 제가 보기에는. 1대 1은 아닌 것 같고 남자가 여전히 조금 더 많이 부담하는 입장인 것 같아요. 전세대출을 받더라도 전액 대출이 나오는 게 아니다 보니까 아직은 남자가 조금 더 많이 부담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집을 구할 종잣돈이 없으면 결혼을 고려하는 단계까지 못 갈 가능성이 크죠. 왜냐하면 결혼하자 하고 프러포즈를 했는데 이제 우리가 얼마나 모았는지 까보자 했을 때 어? 없어? 이러면 거기에서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죠.”
“(결혼과 육아는) 좋은 걸 마이너스시킬 만큼 그 외에 안 좋은 게 너무 많대요. 심심하지도 않고 편이 생겨서 든든한 건 있는데 그 외에 수반되는 다른 게. 아이 출산도 그렇고 시댁도 그렇고 성격의 갈등 그런 걸 다 떠나서 두 사람이 맞춰 산다는 게 되게 힘들잖아요. 그래서 결혼한 친구들은 다 말리더라고요. 굳이 그걸 왜 하냐.”
아이 안 낳는 청년들…불평등한 연공제가 만들었다
9일 아시아경제가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저출산 심층원인 및 대책연구’ 보고서에는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여과 없이 담겼다. 불공정한 일자리 격차와 비정상적인 집값, 결혼과 출산에 대한 막중한 부담감, 사회자본 해체, 과열된 교육 등이 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전문가들은 인구지진을 막기 위한 골든타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이후부터는 출산대책의 효과가 먹혀들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이미 전 세계 최하위권이고, 올해는 0.7명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10년 안에 저출산을 극복하려면 세세한 정책사업에 치중하기보다는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보고서에서 언급한 저출산 핵심원인 중 하나는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세대 간 불평등이다. 국내 노동시장은 오래 근무할수록 보상이 커지는 연공제가 중심이다. 한국은 1950년대생 후반-1960년대생 초반의 1차 베이비붐 세대가 정규직 연공제를 가장 오래 누렸는데, 기업부담이 커지면서 청년 일자리 증가와 임금인상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담겼다.
경제적 여력이 결혼과 출산을 좌우하는데, 지금의 청년들이 자산을 형성할 기회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연구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외환위기 이후 생존한 세대가 연공제를 통해 직업과 소득의 안정성을 얻어낸 것이 저출산 요인을 만들어 냈을 수 있다”며 “특정 세대와 집단의 ‘기울어진 안정화’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규직 특권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50대 이상의 임금을 자제해야 청년실업 해소 및 세대 불평등 완화가 이뤄지고 저출산 극복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는 취지다. 연공제를 생산성과 직무가치에 기반한 임금체계로 바꾸고, 보편적 복지 국가프로젝트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부모지원 없으면 결혼 못 해…불평등 "선 넘었다"
청년 내부에서 확대된 불평등도 결혼과 출산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혔다. 실제로 2008년과 2018년을 비교해보면 소득상위 10%의 혼인율은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소득하위 10%에 해당하는 이들은 결혼 확률이 크게 낮아졌다. 부모로부터 지원받지 못하면 결혼과 출산, 육아가 어려워지는 ‘계층화’가 발생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종합의견을 통해 ‘결혼 자격요건으로서 불평등의 정도가 선을 넘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근로소득으로 집값 마련이 불가능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제시했다. 자식들의 부동산 마련을 위해 부모들이 개입하자, 자산에 따라 결혼을 고심할 정도로 결혼 시장이 경직됐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집값 문제로 남성들의 결혼 의욕까지 줄어들었다고 판단했다. 통상 인구학에서는 여성의 지위 상승으로 결혼과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보는데, 한국은 주택 마련에 대한 남성들의 부담감이 지나치게 커 결혼·출산·육아 문제가 더 악화했다는 것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여전히 불가능한 환경도 출산의욕을 꺾는 주범으로 거론됐다. 통계청의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2021년 경력단절 여성 중 출산이나 자녀교육 때문에 비취업 상태인 경우는 44.7%에 달한다. 2016년 51.6%에서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자녀양육 때문에 경력단절 여성의 절반이 애로를 겪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최종적으로 세대, 계층, 젠더 부문에서 대타협을 이룩하고 청년세대가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시적인 정책사업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 스웨덴의 ‘표준임금 사회적 대타협’처럼 사회체계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노동뿐 아니라 연금처럼 세대와 계층별로 극명하게 나뉜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대립적인 젠더 갈등 구조 탈피, 성별과 육아에 따른 직장 내 차별철폐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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