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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선박서 숨진 25세 승근예비역… 직장괴롭힘·산재 인정 대법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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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승선근무예비역이 괴롭힘 끝에 배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일어나지 않을 환경을 조성해야 했다'는 유족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직접적인 가해자뿐만 아니라 선장과 회사의 관리 책임도 함께 인정됐다. 구씨가 사망하고 소송이 제기된 지 5년여 만이다.


출항 선박서 숨진 25세 승근예비역… 직장괴롭힘·산재 인정 대법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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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민사1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고(故) 구민회씨의 유족이 괴롭힘 가해자인 2등 기관사 선배와 선장, 사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유족의 일부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최근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원심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 본안 심리를 거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앞서 3등 기관사 구씨는 2018년 3월16일 근무하던 선박이 페르시아만을 지날 때 유서 한장을 남긴 채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서 앞면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뒷면엔 선배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유족은 선배의 괴롭힘 행위와 구씨를 보호하지 못한 선장, 회사의 관리 책임을 함께 물었다.


사건 당시 구씨는 승선근무예비역 신분이었다.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정하는 교육기관에서 정규교육과정을 마치고 항해사 기관사 면허를 딴 입영대상자는 졸업 후 5년 내 3년간 승선 근무를 하면 군 복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된다. 단, 승선한 기간만 병역 이행 기간으로 인정된다.


유족 측은 증거 확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구씨가 일한 선상의 근무 환경을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증인신문 내용과 구씨가 남긴 카카오톡 대화 등 기록을 통해 선상 내 인간관계를 재구성해야 했다. 승선근무예비역 출신을 직접 만나 설명을 듣기도 했다.


1심은 괴롭힘 행위와 구씨의 사망에 연관성이 없다고 봤지만, 구씨가 '선배 때문에 힘들다'고 선내에서 지속해서 하소연한 점에 주목한 항소심은 달랐다. 재판 과정에선 함께 일한 직원들을 증인으로 불러 '구씨와 선배의 갈등을 상부에 보고했는지' '관련 매뉴얼이 있었는지' 파악했다. "배가 아무리 커도 폐쇄적인 공간인데, 동료가 좋든 싫든 항해가 끝날 때까지 수개월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느냐"고 묻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선배와 선장, 회사의 배상책임을 모두 인정했다. 또한 "군 복무를 대체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당한 일을 당해도 쉽사리 문제 삼거나 하선을 결심하기 어려웠다"며 선장이 자세한 상황을 몰랐다고 해도 선내 고충 처리 체계의 최종 책임자로서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봤다.


구씨의 유족을 대리한 정소연 법률사무소 보다 대표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가 일을 못 했다'고, 회사는 '상황을 몰랐다'고 변론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며 "승근예비역 제도의 당사자들이 느끼는 부담과 중도에 그만두는 비율 등으로 관련 어려움을 입증하고, 고립된 선상 생활 환경에서 피해자에 대한 사측의 관리·감독 책임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선박 관리회사 뿐 아니라 선주사와 선장에게도 선원법상 보호 의무의 책임이 있고, 안전배려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점을 법원에서 인정받았다"며 "배 위에서 일어난 일이라 증거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엄격한 상명하복 관계에서 괴롭힘 자체가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신고나 저항을 못 한 분들에게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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