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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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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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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It doesn’t register with me)"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차기 대선 출마 선언 후, 한 기자회견에서 나이와 건강에 대한 우려 섞인 질문에 대해 그가 내놓은 답이다. 국내에서는 "나도 내 나이를 모른다."라는 농담성 발언이 더 회자됐지만 그가 전하고자 한 핵심은 자기 나이는 문제없다는 것이었다.


‘100세 시대’를 운운하는 요즘인데 미국에서는 80세의 바이든 미 대통령을 둘러싼 나이 논란이 한창이다. 그가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유권자들의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로 인해 그는 재선 발표 후 첫 여론조사에서 참패했다.


미국민들은 그를 나이로 규정했다. 이 조사에서 그를 지지하겠다고 한 유권자는 38%에 불과했다.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44%)은 커녕, 같은 당의 다른 대선 주자인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42%)와의 맞대결에서도 밀렸다. 더 뼈아픈 것은 응답자 10명 중 3명(32%)만이 바이든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만큼 선명한 인지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항목에서 트럼프는 54%를 기록했다.


한 국가를 책임지는 수장의 건강에 대한 우려를 기우라 볼 수는 없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나라 대기업에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왜 짓느냐 물어본 적이 있다고 말하며 "한국"을 "남미"라고 바꿔 부르거나, 비행기를 타려다 넘어질 뻔한 일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바이든보다 어리더라도 외교적 실언을 하거나,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는 수장들은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트럼프만 해도 미국 의회 난입 선동,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성추행 패소, 성매매 추문 소송 등 다양한 일을 저질렀다. 비단 트럼프뿐만 아니다.


대통령직에 적당한 나이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바이든 이전의 최고령 대통령은 트럼프였다. 그는 바이든보다 4살 어리다. 특히 바이든이 차기 대선 도전 전, 주치의의 건강 검진 결과를 공개한 반면, 트럼프는 공개하지 않았다. ‘오는데 순서는 있어도, 가는데 순서는 없다’는 말까지 붙이지 않더라도, 바이든에게만 고령 논란이 집중되는 것은 불공평하다.


국정 운영 능력이나, 각종 정책 수행 능력보다는 나이로 능력을 재단한다는 것은 차별적인 발상이다. 성별과 나이에 있어 차별을 금기하는 미국의 분위기나,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첫 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연륜과 지혜를 갖춘 노인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반복되는 세상에, 그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뜻으로 쓰인 문장이다.


당장 분위기는 좋지 않지만, 유권자의 차별적 시각을 대하는 바이든의 대응은 흥미롭다. 그는 자신의 나이를 개그 코드로 승화했다. 본인을 낮춰 유권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지난달 공군 행사에서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60년 전, 공군사관학교 첫 수업에서 연설했다며 "언론이 뭐라고 하든, 당시 저는 거기 없었다"고 언급하며 청중의 웃음을 터뜨리는 식이다.



유권자들의 차별적 시선과 바이든의 유머러스한 대응의 화학적 결합의 결과는 18개월 뒤 나온다. 바이든을 두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평이 나올지, 아니면 그의 대선 구호인 "함께 이 일을 끝내자(Let‘s Finish the Job)"가 남을지 관심이 쏠리는 시점이다.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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