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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칼럼]성난 사람들과 증오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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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칼럼]성난 사람들과 증오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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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스티븐 연 등 한국계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기도 했고 제작·연출·극본을 맡은 이성진 감독도 한국계라는 점 때문에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삶의 불안정성’에 대해 생각했다. 겉으로는 별문제 없어 보이거나 심지어 완벽해 보이고, 나아가 화려하고 멋져 보이는 어떤 인생들이 알고 보면 얼마나 불안정한지가 드라마 내내 펼쳐지는 듯했다.


특히 증오에 사로잡힐 때 그런 불안정한 삶이 폭로되곤 한다. 우리는 이 불안정한 삶, 불완전한 삶,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자주 나의 희망과 현실이 어긋나기 마련인 이 삶에서 어떤 ‘불편한 에너지’를 축적하게 된다. 즉,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분노의 에너지랄 게 있다. 이 에너지는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증오할 대상을 찾아내어 쏟아지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분노사회’라는 책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우리는 증오할 대상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증오 사회에 살고 있다. 때로 그 대상은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되기도 한다. 혹은 가까운 사람에게 모든 증오를 퍼붓기도 한다. 어떤 집단을 혐오하면서 그들 때문에 내 삶이 엉망이 되었다고 믿는다. 혹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때문에 내 삶이 망쳐졌다고 믿는다. 증오하는 사람은 그 증오의 대상을 너무나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의존적이고 도착적이다.


성난 사람들에서는 이러한 증오가 어떻게 삶을 폭로하는지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증오가 망친 삶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이미 부서진 삶이 어떻게 증오로 폭발하는지를 보여준 이야기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남편은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남주인공은 자살하려고 했다. 이 모든 일은 우리가 믿는 삶의 이상이 현실과 일치하지 않고, 균열하는 현상이고, 분노와 증오가 싹트는 환경이다. 그러다 그들은 마주치게 되고, 에너지를 서로에게 쏟아붓기 시작한다.


증오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다가, 그들이 종국적인 화해랄 것에 이르는 것은 ‘죽음’ 앞에서다. 이제 곧 죽음을 예감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고 서로를 이해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서로를 연민하고 이해할 용기를 갖게 된다. 그전까지는 "너를 절대 이해할 수 없어!"라고 외치며 총까지 겨누던 사이였지만 사실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이해하기 ‘싫었던’ 것이다. 이해하고 용서할 용기가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그저 증오의 에너지에 사로잡힌 채 끝까지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곧 죽을 마당에, 더 이상 그런 증오에 대해 집착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자연스레 깨닫는다. 그냥 솔직하게 자기의 부서짐, 불완전함, 누구도 옳을 수만은 없음을 인정하고 내려놓는다. 그리고 또 알고 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사실,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증오에 대한 처방은 이해다. 혐오에 대한 해독제는 이해다. 분노와 미움의 반대편에는 정확히 이해가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다름 아닌 그런 ‘이해’가 가장 절실히 필요할지도 모른다.



정지우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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