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수가·진료 어려움·보호자 태도 문제 지적
병원에 환자 몰리며 '오픈런'…의료공백 우려
'폐과 선언'으로 화제를 모은 소아청소년과(소아과) 전문의가 의사들이 소아과를 기피하는 이유를 밝혀 온라인에서 확산하고 있다.
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소아과 전문의야. 넋두리 한 번만 해도 될까?'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자신을 30대 소아과 전문의라고 밝힌 글쓴이 A씨는 의사들이 소아과를 기피하는 이유 세 가지를 제시했다.
A씨는 먼저 기본 진료비(수가)가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루에 100~150명을 진료해도 1명당 받을 수 있는 돈이 너무 적다"면서 "소아나 성인이나 기본 진료비는 같지만, 성인의 경우 검사가 많이 붙어서 진료비만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소아과 의사들은) 직장인 연봉과 비교하면 여전히 잘 번다. 하지만 비슷한 그룹인 타과 의사들과 비교하면 소아과 선택한 내가 죄인일 정도로 회의감이 많이 든다"고 적었다. 또 "누가 칼 들고 소청과 가라고 협박한 건 아니다. 아이들이 좋아서 선택했다. 하지만 눈앞에 좀 더 쉬운 길이 있지 않냐"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껌 100개 팔아서 마진 1만원 남기느니, 비싼 거 10개 팔고 같은 마진을 남기는 방향으로 의사들이 자유롭게 직종 변경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이어 소아 진료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소아는 성인과 달리 아픔을 잘 표현할 수 없다. 제삼자인 보호자와 소통하고 자세한 진찰을 통해 병을 파악해야 한다"며 "하지만 아이들은 의사를 무서워한다. 울면서 날 걷어찬다"고 말했다.
이어 "4~5살 아이들은 힘도 세다. 애들은 죄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체력은 닳는다. 가끔 중학생이 오면 정말 고맙다"며 "똑같은 4분 진료여도 성인 15명보다 소아 15명이 훨씬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끝으로 아이 보호자의 태도를 지적했다. A씨는 "내 새끼 귀하지만 (병원에서) 그릇된 부성애와 모성애가 자주 나타난다"며 "진료 과정에서 이상한 타이밍에 급발진하는 부모들을 다독이고 나면, 다음 아이를 진료할 때 힘이 빠진다"라고 적었다.
그는 "잘못된 부성애와 모성애 발현에 맘카페, 사실관계 확인 없는 감정적 공분까지 3박자면 몇 달 안에 밥줄 끊어지는 의사들 자주 봤다"고 호소했다.
A씨는 "현재 전공을 살려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는데 체력적으로 살 것 같다"며 "정부에서 잘 해결해주면 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 (소아과) 탈주할 예정인데 부디 날 붙잡아달라"고 끝맺었다.
병원 운영 어려워 '폐과 선언'…진료전환 교육 560명 신청
한편 지난 3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저출산, 낮은 수가, 지속적인 수입 감소 등을 이유로 병원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폐과'를 선언했다. 의사회는 만성질환·미용·통증 클리닉 등 진료 과목으로 전환을 희망하는 소아과 의사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의사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소아청소년과 병·의원 617곳이 개업했고 662곳이 폐업하는 등 소아과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올해 대학병원 50곳 중 38곳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아과 폐과의 일환으로 의사회는 다음 달 11일 개설되는 진료과목 전환교육 신청을 받았는데, 8일 기준 약 560명이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 소아과 의사의 10%에 달하는 수치다.
이에 소수 병원에 환자가 몰려들며 소아과 '오픈런' 문제가 발생하는 등 소아·청소년 대상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성욱 기자 abc1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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