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너지 패권 맞서 사우디 감산 주도
발끈했던 백악관 이번엔 "전략적 파트너"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산유국들의 대규모 추가 감산 결정에 "건설적이지 않은 행동"이라고 직격했다. 미국의 요청에도 감산 행보를 이어가는 사우디의 마이웨이에 백악관은 '전략적 파트너'라 칭하며 지난해 10월 감산 때와는 다르게 대응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모습이다.
3일(현지시간) 옐런 장관은 예일대 강연 이후 기자들과 만나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감산에 대해 "에너지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게 중요한 시기에 매우 건설적이지 않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추가 감산 결정이 세계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 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옐런 장관은 "감산이 에너지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모르겠지만, 세계 성장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며 인플레이션이 이미 높은 시기에 불확실성과 부담을 키운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등 서방 중심의 국가들이 러시아산 원유에 적용한 가격 상한을 감산 결정 때문에 당장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게 가격 상한의 적절한 수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지 모르겠다"며 "물론 우리는 상한 수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바꿀 수도 있지만, 지금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날 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간 협의체인 OPEC 플러스는 내달부터 대규모 감산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우디가 주도한 이번 감산 결정은 앞서 지난해 10월 발표한 총 200만 배럴 규모의 감산 결정과는 별도로, 총 감산 규모는 일일 166만 배럴(bpd)에 이른다.
산유국들의 기습 감산 결정에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 대비 6.28% 오른 배럴당 80.4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일일 상승 폭 기준으로 작년 4월 12일 이후 최대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6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5.7%(4.56달러) 오른 84.45달러로, 1년 만에 최대폭 상승을 보였다.
미국에 반기를 든 이번 기습 감산 결정에 조 바이든 행정부는 즉각 반발했지만, 대응 수위는 상당히 낮아졌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시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현시점의 감산 결정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다만 커비 조정관은 "지난 80년간 그랬던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전히 전략적인 파트너"라면서 "우리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서로 항상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략적 파트너십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감산 결정 때 "근시안적 결정", "후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감산을 주도한 사우디아라비아를 고강도로 규탄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백악관은 나아가 지난해 10월 밝혔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재검토 문제도 통상적인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커비 조정관은 "외교 정책 목표와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하는지 지속해 살펴보지 않는 양자 관계는 없다"면서 "우리는 전 세계에서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보고서를 제출한다던가 제출해야 할 과제물이 있는 것처럼 말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후과 문제와 관련해서는 의회 차원에서 무기 판매에 대한 제한이 있었다"면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며 미국 의존도를 줄여가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바이든 대통령의 압박에도 잇따라 감산 조치를 내놓으면서 사우디가 사실상 러시아 편에 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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