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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국민연금, 정권이 아닌 미래 국민을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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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의 최고경영자(CEO)와 최고투자책임자(CIO) 사이에는 늘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CEO가 정치적 요소를 고려한 가치 판단을 하려고 할 때, CIO는 수익률에 최적화한 의사결정으로 맞서는 경우가 많아서다. 역할 차이에서 비롯된 건강한 긴장감이다.


그런데 최근 국민연금의 이사장과 기금이사 사이엔 이런 건강한 긴장감이 사라졌다. 둘이 합심(合心)한 듯한 발언이 자본시장과 재계를 뒤흔들었다. ‘정치언어’를 구사하는 이사장과 ‘숫자’로 말하는 기금이사의 발언이 쌍둥이처럼 겹친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후 KT나 포스코, 금융지주 등 소유가 분산된 기업의 책임투자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같은 달 새롭게 임명된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이사도 취임 일성으로 소유분산기업 CEO의 ‘셀프 연임’을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다음날 KT 이사회가 복수 후보를 심사한 후 구현모 대표를 차기 CEO 최종 후보로 선정하자 국민연금은 반대 입장을 내놨다.


곧바로 재계가 술렁거렸다. 이사장에 이어 기금이사까지 잇따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KT나 포스코 같은 소유분산기업 현직 CEO들에게 용퇴를 권하는 ‘시그널’로 해석됐다. 자본시장도 빠르게 반응했다. 국민연금의 이런 행동 이후 KT 주가는 3거래일 만에 10% 넘게 급락했다. 순식간에 시가총액 1조원이 증발했다. 자본시장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금이사 발언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며 "지난 3년간 KT나 포스코의 주가나 사업구조 변화를 한 번 보라"며 의아해했다.


지난 3년간 KT의 주가는 30%, 포스코는 17%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주가는 5% 정도 떨어졌다. 그는 "KT나 포스코의 현 CEO는 신사업 분야를 개척해 실질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며 "솔직히 말하면 너무 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난 자본시장의 냉정한 분석이다.


국민연금 이사장과 기금이사의 최근 발언은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평시라면 국민연금이 투명하고 독립적인 수탁자 책임 활동 이행을 위한 규범인 스튜어드십코드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응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발언들이다. 하지만 정권 초기 이사장과 기금이사의 말 맞추기는 자칫 국민연금의 민간기업 인사 개입과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했다. 적극적인 스튜어드십코드를 행사하고 싶다면 주주서한을 보내거나 주주총회에서 안건에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면 될 일이다. 기업 경기와 자본시장이 최악의 상황에 부닥친 지금 ‘자본시장의 대통령’의 취임 일성으로는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우세한 이유다.



국민연금 기금이사 인선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렸던 말은 국민연금이 ‘말 잘 듣는 이사’를 선호할 것이란 얘기였다. 경제 상황이 어려울수록 정권은 거대한 유혹을 받는다. 조만간 1000조원에 이를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정치적·정책적 필요에 동원하고 싶은 유혹이다. 매혹적인 유혹의 속삭임으로부터 기금을 지키고 불리는 것이 국민연금 기금이사의 일이다. 그를 채용한 것은 현 정권이 아니라 미래 국민이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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