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인당 육류 소비량 55.9kg
쌀 소비량은 56.9kg…1kg 차이
50년 전 쌀 소비량은 육류 26배
2000년대 들어 반전 가속화
올해 처음 육류가 쌀 앞지를 수도
[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꼭 쌀밥을 먹어야 하나요?"
서울 강서구에서 자취를 하는 대학생 김문영씨(24·여)는 ‘밥’ 없는 식사가 일상이다. 아침은 원래 먹지 않았고 점심 때도 패스트푸드 등으로 간단하게 먹는 걸 선호한다. 탄수화물 공급원도 주로 빵이나 면이고 단백질은 당연히 고기다. 지난 1주일 간 먹은 점심·저녁 식사 15회 가운데 쌀밥이 포함된 식사는 단 5번에 불과했다. 김씨는 "집에서 먹을 때도 밥과 반찬을 차리는 게 번거로워 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위주로 먹는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다. 그 자리는 밀과 고기가 채웠다. 24일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밀 소비량은 1970년대 14kg 수준에 불과했으나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현재 연간 33kg으로 곡물 중에선 쌀 다음으로 많다.
육류 소비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전국한우협회, 대한한돈협회, 한국육계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소·돼지·닭)은 55.9kg였다. 한국인은 1년 간 돼지를 27.6kg으로 가장 많이 먹었고 닭 14.7kg, 소 13.6kg 순이었다.
육류 소비량은 2000년대 들어 해마다 약 3%씩 증가했다. 2015년 46.9kg이던 것이 2018년 53.8%로 50%대를 넘어섰고 이후로도 쭉 상승세다.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엔 전년보다 다소 하락한 52.5kg를 기록했으나 다시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이다.
반면 쌀 소비량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56.9kg으로 전년(57.5kg) 대비 1.4% 감소했다. 2012년 69.8kg이던 쌀 소비량은 매년 하락해 2019년 59.2kg으로 사상 처음 50kg대로 내려왔고 계속 떨어지고 있어 올해는 육류 소비량이 사상 처음으로 쌀 소비량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추세는 서구식 음식에 익숙한 세대가 많아진 데다, 이를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먹거리 산업의 발전과 연관 있다. 전통적인 ‘쌀밥+다양한 반찬’이란 식습관이 핵가족, 1인가구 생활 패턴과 맞지 않는 점도 주요한 요인이다. 김용휘 세종대 식품생명공학전공 교수는 "음식 문화가 반찬 중심에서 덮밥 중심으로 바뀌었고 쌀보다 밀 중심의 식사, 육류를 선호하는 추세가 더해진 것"이라며 "육류가 주는 특유의 맛을 대체할 식재료가 마땅치 않은 데다, 식습관을 더 간소화하려는 추세도 강하기 때문에 ‘쌀보다 육류’ 트렌드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식생활 변화는 관련 산업 지형도 크게 바꿔 놓았다. 대표적인 수혜 산업은 즉석조리식품 등 가정간편식(HMR)이다. 2020년 국내 즉석조리식품 오프라인 소매시장은 매년 10%씩 성장하고 있다. ‘남아도는’ 쌀을 활용하는 산업도 활성화 되고 있다. 정부는 쌀가공산업 성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2011년 쌀가공산업법을 제정했고, 2014년부터 1·2차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육류 섭취 증가세가 수십년에 걸쳐 진행되면서 한국인의 건강 상태에도 변화가 뚜렷하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으나 충분한 육류 섭취가 청소년 체격 향상과 비만율 증가에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은 많다. 아울러 대장암 등 과거 서양인에 비해 유병률이 낮았던 질병이 한국에서도 일반화 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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