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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반계리 은행나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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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반계리 은행나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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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을 구경하러 미술관을 찾았는데 사람 몸집만 한 큰 돌덩이들이 쏟아져 있는 광경을 봤다면, 그것도 7000개의 돌무덤이 마구 쏟아져 있는 모습을……


사람들은 공사판 같다고 투덜거리기도 했고 전쟁을 겪은 시민들은 흉측하다고 했다. 세계 2차대전의 폭격으로 피폐해진 독일 카셀시에서 열린 국제미술전람회에 요셉 보이스가 벌여놓은 일이었다.


그는 돌 하나에 나무 하나씩 같이 심자고 제안했다. 7000개의 돌은 하나씩 옮겨져 7000그루의 나무 아래 심어졌다. 40년이 다 돼가는 지금 그 돌 옆에서 자라나는 카셀시의 7000그루의 떡갈나무들은 어떤 예술품보다 큰 아름다움과 감동 그리고 메시지를 주고 있다.


인천이 고향인 어떤 분은 어린 시절 식목일 행사로 경인고속도로 주변에 플라타너스를 심었는데, 자신과 나무의 성장을 바라보는 행복이 있었다고 했다. 10살 무렵 보이스카우트 소집을 계기로 심은 나무는 무럭무럭 성장했고 서울로 올라가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돼서 고향 집에 갈 때마다 마주치는 수㎞ 이어진 나무숲을 지날 때마다 어딘가에 있을 자신이 직접 심은 나무를 생각했다고 한다. 아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해주리라 했었으나 어느 날 아름드리나무들이 한꺼번에 베어져 버린 사실을 알고 참담했다고 했다.


교과서보다 주변 이야기로 기억에 남는 내 첫 국어 선생님은 어느 날 분개하셨다. 얼마 전 친척이 찾아와 은행나무를 심는 사업을 하자고 했는데 그 이유가 지금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플라타너스의 꽃씨가 날아다녀 천식을 유발하거나 해충이 많아 은행나무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생님은 나무의 꽃씨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태평양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린 정도라며 왜 나무로 돈을 벌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후회하고 친척분은 돈을 많이 버셨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뒤로 정말로 전국의 많은 플라타너스가 은행나무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늦가을의 광화문 거리는 노란 은행잎들이 흩날리는 기억의 정취였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아름드리나무들이 줄지어 뿌려대는 노란 낙엽은 카퍼레이드의 환영식 같았고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의 피날레였다. 그 오래된 나무들은 친일의 죄목을 뒤집어쓰고 사라졌다. 또한 전국의 가로수로 이제야 자리 잡은 은행나무들은 열매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과거 플라타너스가 처한 운명에 놓여 있다.


두바이의 가로수는 대추야자 나무다. 주렁주렁 열리는 대추야자들이 길에 떨어져 찐득거리는 문제가 생긴다. 이에 시청에서 열매에 그물망을 쳐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공존의 방법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개발이 늦었던 강남이라 커다란 플라타너스가 멋진 가로수로 남아있다. 상하이나 도쿄에도 커다란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멋스럽게 줄 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껍질이 벗겨진 플라타너스, 우리말 이름은 버즘나무. 그러나 내겐 익숙지 않은 버짐 무늬보다는 멋진 카모풀라쥬(위장 군복) 패션 같다.


인간의 짧은 계산으로 섣불리 나무에 톱질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천년 가까이 살고 있는 반계리 은행나무 아래서 하고 왔다.



서재연 미래에셋증권 갤러리아WM 상무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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