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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진주만의 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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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진주만의 오판 미국이 2차대전 시기 양산했던 에식스(Essex)급 항공모함 모습(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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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1941년 진주만 공습 당시 일본 군부의 진짜 목표는 미국의 궤멸이 아니라 미국과의 협상이었다. 미국은 1937년 일본의 중국 침략 이후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었고, 일본은 진주만 공습이 성공해 일본의 군사력을 미국인들에게 각인시켜주면 미국이 경제제재를 풀고 자국과 불가침 협약을 맺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오판의 근거가 된 것은 앞서 일본이 1905년 겪었던 러일전쟁이었다. 당시에도 일본은 러시아 본국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고,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러시아 주둔군과 국지전을 벌여 승기를 잡은 후 한반도 지배권을 받는 협상을 원했다. 1905년 당시 러시아는 식량난과 민중봉기 등으로 전쟁을 계속 이어갈 상황이 아니었고 미국이 중재를 해주면서 일본이 원하는 대로 국지전이 끝난 뒤 협상이 이뤄졌다.


일본 군부는 진주만 공습도 러일전쟁 때처럼 국지전 이후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풀릴 것으로 생각했다. 이를 위해 공습 후 소련에 미국과의 협상 중재까지 부탁해놓은 상태였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 여파로 경제난이 심화된 상황이었고, 유럽에서 벌어진 2차 대전에도 참전치 않으며 대외 중립을 선언하고 반전운동이 한창 전개되던 시점이었다. 일본 군부는 진주만을 공격하면 미국 내 반전운동이 더욱 심해져 미국정부가 더 빨리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일본 군부의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역사상 가장 큰 전략적 오판으로 기록됐다. 진주만공습은 미국의 반전여론을 완전히 잠재우고, 미국이 2차 대전 참전과 대일 전쟁에 나서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일본에 당한 치욕에 복수한다며 미 전역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자원입대에 나섰고 미군 조종사들은 목숨을 걸고 도쿄 폭격에 나서는 등 역효과를 불러왔다.


일본 군부가 거대한 오판에 빠졌던 이유는 미국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어린 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은 돈과 탐욕, 민주주의의 방종에 빠져 평화에만 젖어있는 나약한 정신상태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대공황을 겪고 있던 미국인들은 어느 시대의 미국인들보다도 강인하고 호전적이며 위기를 극복해낸 사람들이라 평가받고 있다.



일제가 진주만 공습에서 보여준 오판은 적어도 미국이란 나라가 국지적 무력 도발로 의지가 꺾여 협상 테이블에 앉는 나라가 절대로 아니라는 교훈을 남겼다. 그러나 아직도 이 '진주만의 오판'을 직시하지 않고 위험한 도박을 벌이려는 나라들이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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