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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맞았다는 말을 어떻게 해" 욕먹고 학대당해도 속 앓이만…골병드는 노인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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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학대 예방의 날' 정서적 학대 피해 가장 많아
신체적 학대·방치하는 방임도
탑골공원 일대서 만난 노인들 "맞았다고 말 못 해…창피해서"
정부, 노인학대 방지 위한 대책 강화 방침

[르포]"맞았다는 말을 어떻게 해" 욕먹고 학대당해도 속 앓이만…골병드는 노인들(종합) 15일 오후 서울 종로 낙원상가 일대 한 그늘에 노인이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다. 오늘은 `세계 노인학대 예방의 날`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들은 욕설과 폭행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김봉주 인턴기자 patriotb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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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허미담 기자, 김봉주 인턴기자] "맞아도 말 못하는 노인도 많아요. 창피해서…"


15일 '세계 노인학대 예방의 날'을 맞은 가운데 이날 노인들이 많이 모여 여가를 즐기는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일대서 만난 80대 노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자신들을 상대로 하는 욕설과 학대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한 노인은 자식이 집을 나가라고 했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인들은 이 같은 사실을 대체로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자식에게 욕을 먹고 이를 밖에 얘기하는 것은 내 자식을 욕보이는 짓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일부 노인은 학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혐오성 발언을 하는 20~30대들에 대한 성토도 쏟아졌다. 그러나 노인들의 이런 울분은 탑골공원 담을 넘지 못하고 그들 안에서만 맴돌았다. 사실상 속앓이만 할 뿐이었다.


[르포]"맞았다는 말을 어떻게 해" 욕먹고 학대당해도 속 앓이만…골병드는 노인들(종합) 15일 오후 서울 종로 낙원상가 일대 한 그늘에 노인들 줄지어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다. 사진=김봉주 인턴기자 patriotbong@asiae.co.kr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두는 노인들 사이에서 홀로 앉아있던 최모(80)씨는 한참 동안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는 "젊은이들이 우리 나이대 사람을 안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다"라면서 "우리 자식들도 나를 좋아하진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내 자식도 폭행까진 아니지만 내가 싫다고 집을 나가라고 하더라. 자식이 세 명인데 유독 아들만 그런다. 지금 아들과 안 만난 지는 5~6년 되는 것 같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나이 먹으니까 갈 곳이 없어서 여기(탑골공원)만을 찾게 된다. 나와 함께 놀던 친구들은 다 돌아갔고, 마땅히 놀 곳이 없어서 여기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 학대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노인학대 통계를 처음으로 작성한 2005년엔 서울지역 노인학대는 590건이었다. 그러다 2010년 863건, 2015년엔 1061건으로 증가해 지난해엔 1963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2005년 대비 2.3배 어르신 학대가 늘어난 셈이다.


[르포]"맞았다는 말을 어떻게 해" 욕먹고 학대당해도 속 앓이만…골병드는 노인들(종합) 15일 오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일대 노인들이 더위를 피해 그늘에 앉아있다. 이날 아시아경제 취재진이 만난 노인들은 노인들에 대한 폭행 등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털어놓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사진=김봉주 인턴기자 patriotbong@asiae.co.kr


서울시는 "서울시 노인학대 신고접수는 2007년 최저치인 375건이었으나 점차 증가해 15년간 연평균 972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어르신을 학대한 사람은 가족(89.1%)이었다. 아들(37.2%)과 배우자(35.4%), 딸(11.9%) 순으로 가족에 의한 학대가 많았다. 학대 피해 노인이 자녀나 배우자와 동거하고 있는 경우(73.1%)가 많은 데 따른 결과였다. 어르신을 학대한 행위자는 남성(78.3%)이 많았다.


또한, 지난해 신고가 접수된 학대 피해 노인 중 81.4%는 여성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학대 피해 중 72.1%가 1년 이상 지속했다. 발생 빈도는 '한 달에 한 번 이상'이 67.5%로 가장 많았고, '3개월에 한 번 이상' 13.8%, '6개월에 한 번 이상' 7.3% 순으로 뒤를 이었다.


이 같은 학대에 대해 한 노인은 두려움을 토로했다. 낙원상가 지하도 근처에서 만난 노인 김모(82·여)씨는 "요즘 뉴스를 보면 노인학대가 꾸준히 일어나는 것 같다"면서 "여기 있는 노인들은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대다수다. 그래서 '학대를 당했다'는 말은 주변에서 듣지 못했지만, 뉴스를 보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서 무섭더라"고 토로했다.


이어 "노인학대는 당연히 없어야 한다"면서 "나는 혼자 살아서 이런 걱정은 크게 하진 않지만, 혹여나 노인이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거나 할까 봐 무섭다"라고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르포]"맞았다는 말을 어떻게 해" 욕먹고 학대당해도 속 앓이만…골병드는 노인들(종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운영 중단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는 한 노인.사진=아시아경제DB


실제 학대받는 노인은 갈수록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9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1만6천71건으로 전년(1만5천482건)보다 3.8% 증가했다.


노인학대는 보통 여러 유형의 학대 행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지난해에는 정서적 학대 피해를 호소한 사례가 42.1%로 가장 많았고 신체적 학대(38.1%), 방임(9.0%) 등이 뒤를 이었다.


노인혐오 문제도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조사한 '우리나라 연령주의 실태에 대한 조사연구' 따르면 '노인은 다른 사람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 '노인은 실력보다 나이, 경력, 직위 등으로 권위를 세우려 한다'는 문항에 각각 71.7%, 63.7%가 '그렇다'고 응답하는 등 고령자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르포]"맞았다는 말을 어떻게 해" 욕먹고 학대당해도 속 앓이만…골병드는 노인들(종합) 15일 오후 서울 종로 낙원상가 인근에 있는 무료급식소 앞에 노인들이 줄지어 서 있다.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이에 대해 한 노인은 일종의 불가피한 환경으로 인해 노인혐오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노인 자체에 대한 혐오가 아닌 환경적 요인 탓이라는 주장이다.


영등포구 노량진에서 매일 지하철을 타고 탑골공원을 찾는다고 밝힌 조모(83)씨는 "노인들을 반겨주는 곳이 어디 있느냐. 근데 여기 오면 밥도 주고 친구도 만날 수 있다. 다른 곳을 갈 필요가 딱히 없는 거다. 탑골공원은 늙은이들을 위한 장소다. 근데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아놨으니, 갈 곳 없는 노인들은 이곳을 배회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다 나이가 안 들 것 같으냐.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나이가 들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미래는 생각하지 못한 채 노인혐오를 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절 교육이 잘못되어 폭행 등 혐오가 일어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종로 3가역 인근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밝힌 김모(74)씨는 "노인학대 근절을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들이 자식 교육을 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이 '노인공경'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장유유서 정신을 어렸을 때부터 교육했더라면 노인을 향한 학대가 덜 일어났지 않을까 싶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노인학대, 혐오 등이 해가 지날수록 늘어나는 가운데 정부는 노인학대 방지를 위한 대책을 강화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는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재산이나 권리를 빼앗는 경제적 학대를 막고자 통장관리 서비스, 생활경제 지킴이 사업 등을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또한, 서울시는 이 같은 노인학대 예방을 위해 노인학대 예방시스템 구축을 위해 민관의 협력체계를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정진우 서울시 복지기획관은 "서울시는 기존의 제도를 되짚어보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개선해 노인학대 없는 서울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김봉주 인턴기자 patriotb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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