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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be 혹은 happy 4―문/최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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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굽혀 문의 손잡이를 아래로 잡아당겨야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 여름날 옥탑방의 열기로 달아오르는 목울대, 건물의 붉은 벽돌처럼 들끓어서 말 한마디에도 바싹바싹 담배 끝이 타들어 갔다. 그런 날에는 그림자에서도 가죽 타는 냄새가 솟구칠 것 같았다.


강과 여자가 만나면 너(汝)라는 의미가 된다


야근하러 나가는 애인의 등에 손인사하는 미안함보다 무능함으로 뒤돌아오는 골목길, 목젖까지 꽉 찬다. 눈물은 돈이 되지 않아 미안해진다. 노란 꽃들이 발효되는 시간, 빵 굽는 냄새, 햇살 한 줌 모아 입김을 불어 본다.


히브리어에는 죄를 표현할 수 있는 관념어가 없다.


가난은 죄처럼 느껴지게 한다. 잠자리의 눈이 파악한 겨울 하늘은 내가 관찰하기 이전의 고요한 색, 근본적인 것은 급진적인 것이다. 체 게바라는 중산층에서 태어난 혁명가, 당신의 눈물처럼, 국을 끊일 때 녹말가루를 조금 넣으면 오랫동안 국이 식지 않는다. 은행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않는다. 그곳에 고백의 언어가 있다.


예언자는 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죄를 거슬러 예언한다


끝끝내 심장에 새겨 넣는, 마음이 읽어 낸 저 여린 흔들림, 달려가 안아 주지 못했던 지상의 방 한 칸, 원자의 주위는 비어 있는데, 빈 공간은 공기처럼 무게를 지녔다. 바람 불면 밤마다 들짐승이 어금니 깨무는 소리, 옥탑방 가건물의 문틈마다 들려오곤 했다.


노란 팬지꽃 사이 조각달로 떠 있는 지상의 방 한 칸



[오후 한 詩]be 혹은 happy 4―문/최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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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죄처럼 느껴지게 한다." 도대체 이 문장에 무슨 말을 더 잇댈 수 있겠는가. 그저 참담할 따름이다. 그런데 시인은 왜 이 문장 앞에 "히브리어에는 죄를 표현할 수 있는 관념어가 없다"라고 썼을까? "히브리어에는 죄를 표현할 수 있는 관념어가 없다"는 실은 폴 리쾨르의 <악의 상징>에서 따 온 것인데, 성서가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되는 동안 벌어진 '죄'의 의미론적 전치와 그에 따라 새롭게 구조화된 '죄의 상징' 체계에 관해 기술한 대목의 첫 문장이다. 다만 어떤 상태에 지나지 않았던 항목들이 '죄'라는 틀 속으로 기입되었듯 비유컨대 '가난'도 자본주의 체제의 여러 양태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무엇인가가 결여되거나 모자란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죄의식으로 굳어 버렸다는 맥락이다.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원죄처럼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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