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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정치 공세로 변질된 서울교통공사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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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공사에 왜 목욕탕이 있고 면도사ㆍ이발사가 정규직이냐고? 20년 전에는 그들도 원래 정규직이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냐?"


최근 서울교통공사에 근무하는 한 지인과의 통화에서 이른바 '고용 세습' 의혹에 대한 내부 분위기를 묻자 나온 말이다. 올해 국감 최고의 이슈였지만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 그대로였다. 의혹만 난무했을 뿐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안정된 직장을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에겐 큰 상처를 줬다. 오늘도 서민이 '상위 10%'가 될 수 있는 드문 기회인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량진 컵밥 거리를 헤매는 공무원 준비생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기회의 평등, 과정과 결과가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등장한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런 일이 계속되는 것은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가 감사원 감사를 요청했고, 정부가 1400여개 모든 공공기관에 대한 채용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오랜 고질적 비리가 일시적 단속과 감사로 고쳐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취재 현장에서 느낀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우선 지나치게 정치적인 문제 제기라는 지점이 눈에 띈다. 자유한국당은 물론, 집중적으로 의혹을 파헤치며 문제를 제기한 측들은 그동안 정작 강원랜드나 금융권 등 전 정권 시절 벌어졌던 '실체가 입증된' 채용 비리들에는 '꿀 먹은 벙어리'였던 이들이다. 이미 '기혼 공무원'의 30%가 넘는 사람들이 부부 관계일 정도로 안정된 직장인 공공부문 내에서의 친인척 비율이 높다는 점 등 여러가지 객관적인 조건은 외면했다. 단지 '그럴 것이다'라는 개연성만을 갖고 의혹 제기를 한 것 치고는 우리 사회 전체에게 가져다 준 상처는 너무 컸다. 여당 유력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박원순 서울시장을 공격하려다 엉뚱하게도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구멍을 낸 것은 아닐까.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노노 갈등도 자리잡고 있다. 뚜렷한 증거도 없이 "내 이것들, 그럴 줄 알았다"며 이곳 저곳 제보와 인터뷰를 하는 이들은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현 노조와의 싸움에서 기선 제압 거리가 필요했다.


'공채 이기주의'도 엿보인다. 최근 공채로 입사한 공사 젊은 직원들이 각종 언론 제보와 인터뷰에 앞장섰다. 왜곡됐던 우리 사회의 일자리 구조가 바로 잡혀지는 과정이 얼마나 힘겨운 지를 명료하게 보여 준다. 우리 사회는 1990년대 후반 IMF사태 이후 비정규직 등 '나쁜 일자리'가 대거 도입됐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공채 순혈주의'가 사람들 머릿 속에 뿌리깊이 자리잡았다. 온갖 왜곡된 고용 구조 속에서 그나마 시험을 봐서 합격한 사람들 만이 정당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과정의 공정성을 강조하며 '자격없는'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헬조선을 극복하고 젊은이들이 절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함께 잘살기'가 필요한 시기다. 과정에 다소 문제가 있다면 시정하더라도, 갈 길은 가야 한다는 얘기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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