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초동여담] 집에 대한 두 가지 마음

시계아이콘읽는 시간55초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30년 된 신혼집 아파트값이 올라 직장인 연봉의 갑절 되는 돈을 번 A. 대출을 더해 분양권 전매로 유명 브랜드 신축 아파트 한 채를 샀다. 그 집은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오르는 중이다. 자산으로 보나 표정으로 보나 A의 삶은 많이 나아져 있었다. 최근까지도 A는 이른바 갭투자(전세가율이 높은 주택을 끼고 시세차익을 노리는 부동산 투자)를 위해 정신없이 매물을 훑었고, 더러는 내게도 관심을 두라 권했다.


타고난 수전노 기질과 '쫄보'의 품성을 가진 터라, 친구 따라 강남 가지는 못했다. 서울 변두리, 오래된 아파트이긴 하지만 자가(自家)로 살고 있는 집에 큰 불만이 없었고, 생활이 복잡해지는 게 싫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식에 손댔다가 몇 달치 월급을 날려버린 경험도 있고. 그저 대출 더 받지 않고, 저축 잘 하고, 아껴 쓰는 것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여겼다. 나는 틀려먹었으니 성투 기념 참치회나 사달라는 대꾸를 A는 답답하게 여겼다.

어린 두 아이가 있고, 서울 시내 빌라에 전세로 거주 중인 B. 소득이나 부양가족 같은 조건을 기준으로 주택청약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나 역시 B에게 청약에 나서거나 대출을 받아 집을 살 것을 얘기했지만 그는 모두를 '나중'으로 미뤘다. 워킹맘 처지에 집을 보러 다닐 여유도, 대출금을 갚을 능력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갭투자 얘기로 흐른 대화 끝에 B는 고달픈 얼굴로 말했다. "집은 먹고 자면서 살라고 지은 것 아닌가. 왜 돈 버는 수단이 된 거지."


발품, 정신에너지, 그리고 손실위험 부담이라는 공을 들인 만큼 부동산 투자는 투기가 아니라 단언하는 A. 사정이 허락할 때에 최대한 능력에 가까운 집을 사겠다는 B. 마지막 계층사다리인 부동산에 올라타고 싶은 또는 더 닿을 수 있는 값을 기다리는 것, 어느 하나 절박하지 않은 쪽은 없다.

A와 B의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사이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서민주거 안정', '실수요자 보호'를 외치는 부동산 대책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는 회사에서 인사발령이 났다. 명(命), 편집국 건설부동산부. A나 B를 단지 부러워하거나 안타깝다 느끼기만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기사로 부동산을 대해야 하는 입장에서, 집에 대한 두 마음 어느 쪽도 쉽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부동산부 기자로 딱 일주일이 지난 오늘, 이 글을 쓴다. "좋은 기사를 쓰지 못했다면 너무 멀리서 봤기 때문"이라는 어느 선배의 말은 금과옥조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