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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일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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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꼭 40년 전인 1977년 11월27일은 한국 스포츠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명승부가 펼쳐졌던 날이다. 스포츠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때문에 스포츠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미친 파장이 지대했다.


[초동여담]일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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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5기’의 신화가 쓰여졌다. 당시 파나마 원정 경기에서 홍수환 선수가 2라운드 4차례 다운을 당한 이후에 극적인 역전 KO승을 이끌어냈다. 야구로 치면 이미 패색이 짙어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관객이 생길 법한 상황에서 거짓말 같은 반전을 이뤄냈다.

경기장 안에서 과정을 생각해보면 패배와 승리는 한 꺼풀 차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운명이 갈리는냐에 따라서 결과는 양 극단만 있다. 수직 하락하던 독수리가 눈깜짝할 새에 공중으로 다시 치고 올라가는 듯한 아찔한 쾌감이 국민들의 가슴에 쏟아져 내렸으리라.


현실은 번번이 깨지고 부서지는 일상의 연속이기 십상이다. 민족의 여정도 그랬다. 20세기의 시작을 식민지로 맞았고 해방은 순식간에 다시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폐허 속에서 생존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 모질게 흘렀다.

하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었고 ‘4전5기’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독재의 검은 구름이 온 땅을 덮고 있던 시절이었다. 긴급조치 9호 이후로 휴교령이 내려졌으며, 이리역(현 익산역) 폭발 사고까지 터져 더욱 힘들던 때다. 짓눌려있던 가슴을 잠깐이나마 풀어줬고 ‘역전’에 대한 은밀한 소망이 다져졌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희망을 던져준 경기였지만 상대 선수였던 엑토르 카라스키야에게는 '악몽'과 같았을 것이다. 그가 4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이제는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인 홍수환씨의 초대를 받고서다. 믿기지 않는 패배는 그의 선수생활을 멍들게 했다. 하지만 그는 몇 년 후 은퇴하고 나서 정치에 뛰어들어 시의원과 시장을 거쳐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역시 ‘4전5기’의 승자로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반대로 카라스키야에게 그렇게 패했는데, 40주년 한다고 나를 부르면 내가 과연 갔을지 모르겠다. 나를 축하해주겠다고 와준 카라스키야의 사람 됨됨이에 다시 한 번 반하게 된다. 나보다 한 수 위의 사람이다." 홍수환씨의 말이다.


스포츠가 감동을 주는 것은 한 순간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집요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 때문이다. 삶은 살아가라는 잔인한 명령과 같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번에 못 일어났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은 이길 수 있다. 아니, 포기하지 않음으로 이미 이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과보다는 태도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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