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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사원증도 달라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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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제가 받은 사원증은 비정규직 구분용 이었습니다.”


작년 말까지 국내 대기업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이모(32)씨는 당시 출근길을 떠올리며 “비참했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정규직에겐 파란색 줄이 달린 사원증을 지급했고, 비정규직에겐 녹색 줄의 사원증을 지급했다”며 “당당하게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직원을 그저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차별은 임금과 복지 뿐 아니라 사원증에서도 존재했다. 일부 기업들이 비정규직에겐 정규직과 구분되는 사원증을 지급하거나 방문객에 지급하는 출입증만 지급하며 ‘정규직 사원증’이 비정규직의 또 다른 설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씨의 비참함은 출입구를 통과한 후에도 계속됐다. 점심시간, 일부 직원들은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사내 수면실을 이용했지만 이씨는 이용할 수가 없었다. 비정규직에게 지급된 사원증으론 수면실 문을 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수면실을 이용하려면 다른 정직원이 드나들 때를 이용해 들어갔어야 했다”며 “같은 일 하면서 월급도 적게 받는데 이런 차별까지 받아야 하니 정말 억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규직 사원증’의 존재만으로도 비정규직은 위축됐다. 지난 3월까지 지상파 방송국 계약직으로 1년간 일했던 김모(29)씨도 이씨와 같은 경험을 했다. 김씨가 지급받은 사원증은 정규직 사원증과 디자인이 달랐다. 정규직 사원증은 흰 바탕에 증명사진만 붙어있었지만 김씨의 사원증은 주황색 줄무늬가 있어 비정규직임이 한눈에 드러났다. 김씨는 “사원증을 어디에 꺼내 놓아본 적이 없다”며 “정규직 사원증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위축되곤 했다”고 전했다.


비정규직에겐 사원증이 아닌 출입증이 지급되는 곳도 있었다. 중견 컨설팅업체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또 다른 이모(29)씨는 계약연장으로 3년째 일하고 있지만 사원증을 지급받은 적이 없다. 건물 출입만 허용되는 출입증을 지급받은 이씨는 구내식당 이용에 제한을 받는다. 이씨는 “정직원에게 지급된 사원증엔 구내식당 결제 기능이 있어 카드를 찍기만 하면 되지만 비정규직은 현금으로 따로 결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페를 이용할 때도 이씨는 박탈감을 느낀다. 회사 앞 카페에선 사원증을 제시하면 음료를 할인해준다. 하지만 회사 직원임을 묻는 카페 점원에게 이씨는 빈 백지의 출입증을 제시하지 못해 늘 남들보다 비싸게 음료를 사먹을 수밖에 없다. 이씨는 “이런 작은 불편들이 쌓이고 쌓여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비정규직 직원에게 사원증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고용의 특수성과 업무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구체적인 답변은 회피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사람들을 서열화 하는 경향이 커, 사원증 차별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윤 교수는 “업무상 필요하다면 정당성을 인정하겠지만 업무와 관련 없는 차별은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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