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량 감경' 판례 악용, 한국성폭력상담소 '관련 사례' 수집
순수한 의도가 아닌 형량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성폭력 가해자가 성폭력 피해 지원 단체에 기부금을 내는 '악어의 눈물'과도 같은 지원금이 부쩍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지원금이 늘어나면서 성폭력 피해 당사자들에게 2차 정신적 피해가 가해질 것이 우려되자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지원단체에서는 이달 초부터 관련 사례 수집에 나섰다고 밝혔다. 재판 중인 상황에서 감형을 목적으로 내는 가해자들의 기부금은 앞으로 접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달 1일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에는 '가해자의 일방적 성폭력상담소 후원이 감경요인이 된 사례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해당 글에서 상담소 측은 "최근 들어 사건 진행 단계 중인 성폭력 가해자가 후원금이 양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후원금을 납부하고, 가해자의 가족 중 일원이 단체에서 실시하는 교육에 참여한 후에, 입금영수증이나 교육수료증을 재판부에 제출하여 감형을 받은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라며 "이런 종류의 일방적인 '후원'을 가장한 형량 감경노력이 매우 당황스러우며 분노스럽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가해자의 일방적 후원금이 '반성' 또는 '사죄'로 해석되어 감형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라며 "일방적인 후원금을 통한 형량감경은 상담소에 대한 후원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상담소 측은 "입금 전후에 후원의사를 직접 밝히는 경우, 성폭력 관련 재판중인지 묻고 그렇다고 대답하는 경우에는 이유를 설명하여 후원·후원확인서 발급 등을 거절하고 있으며, 이미 입금한 경우 계좌번호를 물어 해당 금액을 되돌려 주는 일도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2015년 서울동부지방법원이 선고한 한 판례가 문제로 지목된다. 해당 판결에서 법원은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자백하면서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범죄 전력이 전혀 없는 점, 성폭력 예방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수강하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정기 후원금을 납부하며 다시는 이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 (중략) 등을 비롯하여 형법 제 51조에 정해진 사항을 참작하여 개전의 정상이 현저하다고 인정되므로, 300만원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하기로 한다"고 선고했다.
법원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정기 후원금을 납부'한 것을 형량 감경 사유 중 하나로 밝히면서 실제 상담소에 기부금을 내는 성폭력 가해자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상담소 관계자는 "일방적인 후원금을 통한 형량감경은 상담소에 대한 후원이 아니다. 이제까지 상담소를 후원해 온 가해자가 있었다면, 그것은 유일하게 피해생존자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고, 이를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었던 몫은 피해자 당사자에게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법부는 일방적 후원금을 가해자의 '반성 노력'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사법부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역행하는 감경사유를 늘려 가면 안된다"라며 관련 사례에 대한 제보를 요청했다.
아시아경제 티잼 송윤정 기자 singas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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