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자필 메모, 2014년 8월 작성 정황"…공식 의견표명 없는 삼성, '경영권 승계와 무관' 입장 여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이 공개됐지만, 핵심적인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해당 문건을 누가 작성했는지, 작성 배경은 무엇인지, 문건의 정치적·법적 의미는 무엇인지 의문이 해소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청와대 문건에는 삼성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내용도 담겼다. '삼성 경영권승계 국면→기회로 활용' '경영권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 경제에 더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 모색'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 등이 자필메모 형식으로 기재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이 한창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번 문건이 공개되면서 정치권과 법조계 모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문건의 존재와 일부 내용을 공개했을 뿐 문건의 실체를 둘러싼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우선 작성 주체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게 순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삼성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전 정부 청와대가 생산한 메모가 2014년 8월로 추정되는 정황이 있다"면서 "자필 메모라 작성 시점이 없지만 그때가 맞는다는 정황이 있어 특검에 관련 자료를 함께 넘겼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삼성 경영권 관련 메모의 생산시기를 2014년 8월로 추정한다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이때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건강상 문제로 쓰러진 지 3개월 지난 시점이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가 이뤄진 시점은 2014년 9월이다.
메모에 담긴 내용은 청와대가 삼성 경영권 승계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의 위상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고려할 때 청와대가 관심을 두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청와대 메모에 담긴 내용은 그동안 특검이 주장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삼성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게 이뤄졌고,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승마지원도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특검은 재판 과정에서 공소사실을 입증해야 하지만, 특검 측 증인으로 나온 이들이 말을 바꾸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부회장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8월2일을 결심 기일로 예정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재판부는 8월 중순께 1심 선고를 하기 위해 일주일 4회 이상의 공판 일정을 잡는 등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청와대 문건이 이 부회장 사건 재판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지만, 일정상 쉽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삼성은 청와대 문건 공개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상황 전개를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 문건이 증거 능력을 갖추려면 누가 문건(메모)을 작성했는지, 작성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가 우선 풀려야 한다. 또 문건의 법적·정치적 의미에 대한 의문도 풀려야 하는 상황이다. 검찰에 자료를 넘긴 만큼 수사를 통해 이러한 의문을 풀어야 하는데 단시일 내에 결과물을 내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재판부는 이번 청와대 문건 공개와 무관하게 예정된 일정대로 1심 선고를 할 수도 있고, 일정을 조정하면서 문건의 증거 채택 가능성을 열어둘 수도 있다. 후자일 경우 이 부회장 구속기한 만기일인 8월27일 이후로 1심 선고가 미뤄질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 부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이번 청와대 문건은 정치권의 '핫이슈'다.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나오고 있고, 정당별로 반응도 미묘하게 갈리고 있다. 하지만 법적인 측면은 조금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작성 주체, 배경, 의미 등 3제(題)가 해소돼야 청와대 문건(메모)의 법적인 성격이 규정될 것으로 보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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