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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반공일(半空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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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반공일(半空日)'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오전만 일하고, 오후에는 쉬는 토요일이 바로 반공일이다.


그날은 한 주간 피로에 지쳐있던 얼굴에 화사한 기운이 돌았다. 직장인들은 점심 무렵 일을 마친 뒤 동료들과의 낮술 한잔을 통해 피로를 달랬다.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값싸고 푸짐한 안주에 막걸리 잔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힐링의 시간이었다.

반공일은 가족에게도 설렘 가득한 날이었다. 아이들은 점심 무렵부터 동구(洞口) 밖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기분 좋게 취한 아빠가 사탕이나 과자를 사들고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앞다퉈 마중을 나갔다.


가족 여행도 주로 반공일에 떠났다. 텐트를 짊어지고 김밥에 사이다, 과일 등을 준비한 뒤 산으로 강으로 나들이에 나섰다. 강가에 앉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석양(夕陽) 지는 풍경을 함께 감상하면 꿀맛 같은 반공일의 하루가 저물었다.

[초동여담] 반공일(半空日) 추석 황금연휴 /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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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일은 2000년대 이후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주5일제는 2003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고, 2004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관공서를 넘어 일반 기업에 정착될 때까지 토요일은 노는 날이 아니라 당연히 일하는 날이었다.


아침에 출근해 점심 무렵 일을 마치는 반공일의 특성상 업무 효율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출근 후 조간신문을 뒤적이다 회의를 간단히 마치고 점심 무렵 퇴근을 준비하는 이도 많았다. 반공일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이 변하면서 휴일에 대한 개념도 많이 유연해졌다. 어정쩡한 분위기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쉬는 게 경제적으로 더 낫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정부가 추석 연휴와 주말 사이에 낀 10월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려는 것도 그 때문 아닐까. 계획대로 진행되면 9월30일부터 10월9일까지 장장 10일의 휴가가 이어진다.


'황금연휴'를 앞두고 있지만, 설렘의 강도가 예전 반공일 시절보다 더 강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1970~1980년대에는 토요일 퇴근 이후 월요일 출근까지 '100%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니 직장인이 집 밖을 나서면 회사에서 연락할 수단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보편화한 요즘은 밤낮없이 이어지는 업무 관련 메신저 때문에 휴일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여름 휴가시즌을 맞아 직장인들의 공통된 바람은 '진정한 자유' 아닐까. 인터넷과 휴대전화, 메신저가 닿지 않은 공간에서 우리의 뇌에 온전한 휴식을 선사할 수 있다면 그곳이 최고의 휴양지 아니겠는가.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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