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관저로 입주했다. 김정숙 여사가 민원인에게 라면을 제공하는 등 파격적이고 서민적인 소통 행보로 호평을 받고 있는 문 대통령 일가족의 청와대 생활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청와대 안살림을 책임진 총무비서관 자리에 통상 최측근을 앉히던 관례를 깼다. 별다른 안면도 없는 이정도 전 기획재정부 국장을 임명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청와대를) 시스템과 원칙에 따라 운용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에겐 '파격적' 또는 '흐뭇한' 상황이다.
그런데 문득 "문 대통령 일가족의 청와대 생활비는 이제 누가 대지?"라는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에선 사실 큰 관심이 없던 주제다. '제왕적 대통령제' 탓인지, 공사(公私)의 구분에 다소 관대 또는 무관심한 사회분위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일가족과 함께 청와대에 거주하는 동안 드는 생활비에 대해 논란이 벌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국가 기밀'이라는 이유로 언급 조차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대통령 일가가 얼마나 부담하는 지, 국가가 얼마나 지원하는 지, 법적인 근거는 마련돼 있는 지 등 아무 정보가 공개돼지 않고 있었다. 국민들 가운데에서도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인데다 국정 수행의 노고가 큰 데 그 정도도 지원 못하냐"는 의견이 적잖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선 대통령 일가가 취임 후 백악관 관저에 입주하더라도 공과금ㆍ공식 만찬비용 등을 제외한 생활비 일체를 자부담하는 등 투명화돼 있다. 합리주의에 기초해 공사 구분이 철저한 사회 전통과 민주주의의 산물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백악관에 입주하는 영부인들이 "치약값, 휴지값까지 우리보고 내라고요?"라고 한탄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3월 위례시민연대라는 작은 시민단체가 청와대 정보공개 청구 결과를 공개하면서 실태의 일부가 드러나고 논란이 됐었다.
당시 위례시민연대는 대통령비서실을 상대로 "대통령(가족 포함)이 청와대에서 상시 무료로 숙식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대통령비서실 총무행정팀은 지난해 3월2일 정보공개 결과 통지를 통해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상시 직무를 수행해야 하고 특별한 신변안전이 요구되기 때문에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국유재산법 등에 의거 청와대 내에 관저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짧은 한 줄짜리 답변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청와대 측은 대통령 일가족의 '무료 숙식'을 부인하지 않았다. 즉 생활비 전반에 대한 국고 지원이 이뤄지고 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또 청와대 측은 대통령경호법ㆍ국유재산법을 무상 숙식 제공의 법률적 근거로 삼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같은 답변을 받은 위례시민연대 측은 곧바로 성명을 내 "청와대가 제시한 대통령 경호법이나 국유재산법을 아무리 살펴 봐도 대통령 일가족의 청와대 무료 숙식 제공과 관련된 근거는 없었다"며 " 국가원수(가족 포함) 경호를 위해 관저(숙박) 사용료 면제는 이해되나 식비는 납부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반박했다.
이런 정황으로 봐, 최근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은 청와대에서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이 본인의 월급은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무료 숙식을 제공받아 온 것으로 짐작된다. 박 전 대통령도 지난 4년간 2억원 가량의 연봉을 빠짐없이 저축해 그 액수만큼 재산 총액이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양적 정서 등을 감안, 백번 양보해 무료 숙식 제공 자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은 시정할 필요가 있다.
이미 시ㆍ도 지사, 국무총리 등 관저 생활을 하는 다른 선출직·정무직 공무원들은 공과금과 공식 만찬비 등을 제외한 식비나 개인 생활비는 모두 직접 월급봉투에서 지출하고 있다.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정권 교체를 통한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을 외쳐 온 문 대통령, 청와대 생활비를 둘러 싼 논란도 '시스템과 원칙'에 따른 운영으로 말끔히 해소해줬으면 한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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