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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젊은 거장의 또다른 베토벤 3대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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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젊은 거장의 또다른 베토벤 3대 소나타 김선욱의 롯데 콘서트홀 리사이틀. [사진제공=빈체로, 촬영=김윤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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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은 지난해 7월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으로 내한 독주회를 연지 불과 8개월 만에 지난주 3집 앨범(악첸투스 레이블) 발매 투어(과천ㆍ인천ㆍ서울)를 했다. 베토벤의 유명 피아노 소나타인 '비창'(8번)ㆍ'월광'(14번)ㆍ'열정'(23번)이 수록됐고, 연주됐다. 김선욱의 내한 리사이틀은 보통 2년 간격이었지만 이번엔 주기가 급격히 당겨졌다. 베토벤으로 뭔가를 긴밀히 말하려는 의지가 읽혔고 18일 롯데콘서트홀의 1900여 좌석 매진으로 연결됐다.

 김선욱이 뉴미디어와 쇼케이스 출연으로 베토벤관(觀)을 대중에 직접 피력하는 방식은 불가피하게 역풍을 초래한다. 카드를 미리 보이고 게임에 나선 것과 같다. 음반 구매객이라면 신보와 실연을 비교하고, 오래 지켜 본 청중은 2010ㆍ2012ㆍ2017년의 '월광'을 견주게 된다. 이런 행보는 "음악가는 음악으로만 이야기해야 된다"는 클래식계의 오랜 금언과 배치되지만, 서로를 숨기는 동안 클래식 시장은 안온했고 정체됐다. 김선욱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노출하면서 베토벤을 동시대 클래식 담론의 실질적 화두로 끌어내려 했다.


 첫 곡인 부조니가 편곡한 바흐의 '토카타, 아다지오와 푸가(BWV564)'는 오르간이 설비된 롯데콘서트홀의 어쿠스틱을 감안한 선곡이다. 장중하고 화려한 음색을 구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결과적으로 김선욱은 절제와 명확성, 단순함을 축으로 오르간의 기교를 건반으로 전이시키는데 독자적인 이해를 보였다. 오르간이었다면 여러 스톱을 절묘하게 블렌딩하는 패시지에서 김선욱은 창의적인 박자 감각을 보였다. 김선욱의 멘토, 언드라시 쉬프가 그랬듯, 피아노를 다루던 연주자가 바흐 시절의 건반곡에 다가가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비창'은 피아노와 홀의 상태에 따라 표변하는 김선욱의 오늘을 볼 수 있어 유익했다. 16일 과천시민회관에서 김선욱은 갓 생산된 스타인웨이로 마치 곁에 베토벤이 지켜보고 있듯이, 온갖 기보의 지시 사항들을 세밀히 구현했다. 음정과 길이, 박자 감정 표현이나 음조 변화에서 김선욱은 정확한 연주를 위한 탐구적 자세를 견지했다. 자신이 시도한 미분음과 극도로 섬세한 터치를 악기가 그대로 받아들여서 세세하게 울림을 내주었기에 가능한 태도다.


 반면, 18일 만석 상태의 롯데콘서트홀에서 김선욱은 어쿠스틱과 피아노 상태에 맞춰 작곡가의 결정 뒤에 숨어있던 작곡 당대의 관례를 찾아갔다. 왼손 트레몰로를 따라 여러 옥타브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구간에서 김선욱은 악보를 관조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비장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과장했다. 자신의 연주가 홀 안의 수용자에게 잘 들리도록 주어진 조건에서 분투하는 동안, 2017년의 '비창'은 논란을 낳았고 결국 건강해졌다. '비창' 연주에 대해 수용자가 쉽게 말할 수 있도록 김선욱은 토론 공간을 넓힌 셈이다.


 '월광'은 김선욱이 걷어내려는 클리세에 한국 관객이 어느 정도 사로잡혀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문제작이었다. 빌헬름 박하우스, 에밀 길렐스, 빌헬름 켐프가 20세기에 남긴 베토벤의 유산은 격조와 함께 낭만주의적 서정이 연주자의 태생적 배경이나 고유의 음색과 결부된 멜로드라마다. 김선욱은 후대가 붙인 '월광' 이미지가 소나타 14번을 바라보는 데 장애가 된다고 보고 형식과 표현에서 가능성을 모색하려던 베토벤의 입장에 주목했다. 비슷한 관점과 접근이지만 중년에 접어든 쉬프가 오랜 연구 끝에 획득한 베토벤 해석의 권위에 비해 김선욱의 연륜 차이가 그대로 국내 관객에 전달됐다. 그러나 2012~13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와 다르고, 음반 녹음과는 또 다른 접근이어서 반가운 변화로 평가한다.


 '열정' 공연을 마친 김선욱을 바라보면서 연주회 시기를 당겨 뭔가를 이야기하려던 김선욱의 본심을 읽었다. 작곡과 기보, 연주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단순히 동시통역의 순도를 높이던 20대의 김선욱은 사라졌다. 30대의 김선욱은 기보된 베토벤과 청취된 베토벤 사이에서 타성을 견제하는 목소리를 화자로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 새로운 고전주의자는 탄생하지 않았지만, 소통 과정을 개방하면서 고전을 풍성하게 하는 담담한 이야기꾼이 등장했다.



한정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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