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수사, 반도체 청문회 등 외부 변수로 행동 제약…낸드플래시 3~5위 업체, 도시바 인수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만약 삼성전자가 도시바 인수 제안서를 제출한다면 그것 자체로 경쟁구도는 요동칠 수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일본 도시바 반도체 사업(낸드플래시) 인수 경쟁에서 삼성전자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 도시바 인수전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삼성은 도시바 인수 경쟁에서 한 발 떨어져 있다. SK하이닉스,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과 마이크론, 대만의 폭스콘 등이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쪽 상황이 바뀌면서 경쟁구도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애초 도시바는 지분 19.9%를 매각해 확보한 2조~3조원으로 원자력 사업 손실을 일정 부분 해소한 뒤 반도체 사업에 재투자할 방침이었다. 도시바는 반도체 사업 자체를 접을 생각이 아니었고, 일부 지분 매각을 준비했다.
하지만 회생방안의 실효성을 둘러싼 반발에 직면했다. 도시바는 50% 이상의 반도체 사업 지분을 매각해 10조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도시바는 이르면 24일부터 재입찰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낸드플래시 원천기술을 지닌 업계 2위 도시바가 사업을 접는다는 것은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업계 3위 웨스턴디지털, 4위 SK하이닉스, 5위 마이크론은 물론 대만과 중국 업체까지 군침을 흘릴 환경이 조성됐다. 인수전에 성공하면 단숨에 삼성과 경쟁구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재무구조나 자금 조달 능력 측면에서 경쟁자들보다 한 발 앞섰다는 평가도 있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인수 금액의 적정성도 따져봐야 하고,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에 힘을 쏟고 있는 중국 업체가 경쟁구도에 합류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반도체 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삼성도 전략적인 차원에서 어떤 액션을 고민할 가능성은 있다. 문제는 삼성의 손발이 묶여 있다는 점이다. 그룹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된 상태이고, 반도체 사업을 책임지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회 반도체 청문회 준비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삼성은 외부 변수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삼성 관계자는 "도시바 인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방침도 정한 게 없다"고 말했다. 삼성이 외부 환경 때문에 행동의 제약을 받는다면 경쟁 업체들은 중요한 변수가 제거된다는 점에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삼성은 중국의 급부상 가능성 등 반도체 시장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유동성 환경에 전략적으로 대처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낸드플래시는 성장가능성이 큰 분야로 D램에 비해서는 글로벌 시장 경쟁구도의 변화 여지가 크다"면서 "삼성이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안정적인 선두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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