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의 동맹 가운데 하나인 한국에서 지난해 국회로부터 탄핵 받은 박근혜 대통령의 뒤를 이으려는 '새로운 대권 후보들(upstart candidates)'이 떠오르도록 부채질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9일(현지시간)자에서 한국 정치권도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을 받고 있다며 기술한 부분이다. 그러나 궁금하게도 떠오르는 '새로운 후보들'이 누구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이름을 나열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 아래 각국을 위협하고 있다. 기사의 내용은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멕시코ㆍ프랑스ㆍ독일 등지의 자유주의적 진보주의 정치인이 부상 중인 반면 그와 비슷한 주장을 내세우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극우주의와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뜻이다.
'프랑스판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이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독자 후보 에마뉘엘 마크롱에 대한 지지가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현지 일간 르몽드는 지난 10일자에서 "르펜이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함을 따라하지 않는다"면서 "르펜이 엘리제궁(宮)에 입성하기 위해 발언 강도를 낮추는 전략으로 돌아섰다"고 분석했다.
FN의 한 고위 관계자도 "일탈은 끝났다"며 "스캔들을 위한 스캔들 만들기 대신 집권 프로그램 가동에 나섰다"고 선언했다. 르펜이 극우에 호소하는 비제도권 대선 후보가 아닌 '통합형 리더'로 자기를 포장하려는 의도다.
국수주의(nationalism) 향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이전에 이미 중국ㆍ러시아ㆍ터키 등이 유행을 주도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11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약속했다. 같은 해 크렘린궁(宮)에 복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러시아를 다시 위대하게'라고 부르짖었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토만 제국'의 영광을 꿈꾸고 있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종종 '메이지(明治)유신' 운운하며 자국 부흥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역시 '위대한 영국'에 대한 향수가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는 역으로 미국의 부(富)와 영향력이 위축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ㆍ인도 같은 아시아 강국의 부상과 국제사회 힘의 이동에 다급해졌다는 뜻이다.
문제는 미국 우선주의가 적자생존만 강요한다는 점이다.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지 않으면 파산하게 마련이라는 시장의 논리다.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정부를 기업처럼 주무르고 있다는 뜻이다. CEO의 행위가 민주적이든 독재적이든 기업 이익만 극대화하면 모든 일은 합리화된다.
그래서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학 교수는 "성공한 기업의 CEO라고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다"라며 "성공한 기업인이라는 점 때문에도 그는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 같다.
국가 경영자가 독단이나 전횡을 일삼으면 국민이 참지 못한다. 대통령은 의회로부터 견제 받으며 의회와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WSJ가 한국 정치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한 '새로운 후보들'은 과연 누구누구인지 정말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