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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의 거인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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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출판 외길' 박맹호 민음사 회장 별세

출판계의 거인 떠나다 박맹호 민음사 회장[사진=아시아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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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국내 출판계의 거목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22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고인이 1966년 5월 서울 종로구 청진동의 10평짜리 옥탑방에서 시작해 키워낸 민음사의 역사는 국내 출판의 성장사와 궤를 함께한다. 단행본 기획, 신진 작가 발굴 등 창의적인 시도로 일본서 번역과 전집물 방문판매가 주를 이루던 국내 출판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민음사는 한국문학의 산실을 넘어 연매출 400억원이 넘는 대형 출판사로 자리매김했다.


신춘문예 탈락이 그를 출판의 길로 이끌었다. 1952년 서울대 문리대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한 고인은 30대 초반까지 문학청년으로 활동했다. 1953년 '현대공론' 창간 기념 문예 공모에서 '박성흠'이라는 필명으로 투고한 단편 '해바라기의 습성'이 당선됐다. 1955년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자유풍속'을 응모해 1등을 했다. 그러나 이승만 자유당 정부를 풍자한 내용이 문제가 돼 취소됐다.

몇 차례 더 쓴잔을 마신 고인은 '올곧은 백성의 소리를 담는다'는 뜻을 담아 민음사를 창립했다. 처음 펴낸 '요가'는 1만5000권이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몇 차례 실패로 빚더미에 앉기도 했지만 재능을 알아보는 예리한 안목과 과감한 기획으로 주목할 만한 인문교양서를 쏟아냈다. 특히 1973년 펴낸 '세계 시인선'은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배치하고 가로쓰기를 도입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듬해 '오늘의 시인 총서' 1권으로 선보인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는 3년 동안 3만부가 팔리며 1981년 출발한 '김수영문학상'의 밑바탕이 됐다.


고인은 재능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문열, 한수산, 조성기, 최승호, 강석경 등 오늘날 우리 문학의 중심인물들이 그가 1976년 제정한 '오늘의 작가상'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김수영문학상 역시 김광규, 이성복, 황지우, 최승호 등 여러 시인들을 배출하며 문학인들의 창작활동을 고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문편집자의 시대를 연 사람도 고인이었다. 이영준, 이갑수 등 편집자로서 별다른 경력이 없었던 이들을 편집주간으로 중용했고, 신구문화사 편집자로 일하던 정병규를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해 혁신적인 책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는 2005년 대표직을 내놓고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출판 현역'으로 남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출판계가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아졌지만 마지막까지 앞날을 낙관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 컴퓨터로 본 것은 쉽게 잊어도 종이로 본 것은 머리에 입력이 더 잘 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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