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지원’ 삼성家 사위 김재열·‘문화계 블랙리스트’ 모철민 전 靑수석 오후 소환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정현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승계 핵심 포석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정부가 개입한 정황이 짙어지면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그룹의 ‘뇌물죄’를 겨냥한 고삐를 당겨쥐고 있다.
특검은 29일 보건복지부 장관 재직 당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로 하여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토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로 문형표 현 공단 이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특검 출범 이래 첫 신병 확보 대상이다.
특검은 지난 21일 공단 기금운용본부, 주무부서 복지부 연금정책국 및 산하 부서 등을 압수수색하고 최근까지 공단·복지부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했다.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 등 청와대의 합병안 찬성 지시를 복지부에 전한 의혹이 불거진 김진수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 문 전 장관의 주거지도 26일 압수수색했다. 27일까지 안 전 수석,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공단 기금이사)도 조사한 특검은 전날 주요 관계자들과 엇갈리는 진술을 하는 문 전 장관을 도주·증거인멸 등 우려로 긴급체포했다.
작년 5월 삼성이 합병계획을 내놓자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분이 전무했던 삼성물산의 가치를 저평가해 총수일가는 득을 보고, 일반 주주는 물론 2대 주주 지위에 있던 국민연금(당시 지분율 11.21%)조차 큰 손해를 보게 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복지부 산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홍 전 본부장이 주관하는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찬성 의결하고 실제 합병승인 임시 주주총회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보유 지분평가액이 각각 1조2000억원 안팎으로 비등했던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식 가치를 제일모직의 3분의 1 수준으로 깎아내려 손실을 자초했다고 보고 업무상배임 책임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특검은 기금운용 정책을 총괄하는 복지부 간부, 홍 전 본부장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문 전 장관이 사실상 합병 찬성을 종용한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제상 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에 관여할 권한이 없지만 인사권 등 행정적 권한을 쥐고 있다. 실제 최광 전 공단 이사장의 경우 홍 전 본부장의 유임 여부 관련 복지부와 충돌하다 동반퇴진한 바 있다. 합병안이 도마에 오른 작년 여름 복지부는 기금운용의 전문성을 명목 삼아 공단에서 기금운용본부를 독립공사로 떼어내려 했다. 정부 산하 공단의 일개 이사가 500조원을 굴리는 세계 3대 연기금, 기관투자자 큰손의 대표로 탈바꿈할 수도 있는 순간이다. ‘자리’가 걸린 상황에서 문 전 장관은 복지부·공단 인적 구성을 틀어가며 찬성 의결이 용이하도록 간여한 정황도 제기됐다.
‘청와대-복지부-국민연금’으로 이어지는 의사결정 왜곡 구조가 사실로 드러나면 이는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국내 대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많은 204억원을 출연하고, 최씨 일가에 94억여원을 특혜지원해가며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경영승계’ 지원을 맞교환한 ‘부정 청탁’의 유력 정황이다.
특검은 이날 오후 2시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 김 사장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이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또 김종 전 문체부 차관 주선으로 비선실세 최순실(구속기소)이 조카 장시호(구속기소)를 앞세워 동계스포츠 이권을 노리고 설립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측과 접촉한 인물이기도 하다.
앞서 검찰은 “심적 부담을 느껴 후원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김 사장 등의 진술에 막혀 삼성이 직권남용·강요의 피해자라고 일단 결론냈다. 특검은 그러나 경영승계를 위해 각종 현안이 산적한 삼성이 경제정책을 쥐락펴락하는 행정수반인 박 대통령과 뒷거래에 나섰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공식 수사 착수 이래 삼성 관계자를 첫 공개소환하면서 출국금지 상태인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강제수사·대면조사도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특검은 같은 시각 ‘문화계 블랙리스트’ 전달자로 지목된 모철민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다. 현재 주프랑스 대사 신분인 그는 외교당국을 통해 특검 출석 요청을 전해 듣고 전날 급거 귀국했다.
특검은 청와대가 박근혜 정권에 비우호적인 문화예술인들을 솎아내고 정부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한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는지 확인하고 있다. 특검은 ‘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인물로 지목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자택 등을 지난 26일 압수수색해 각종 서류와 함께 이들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이어 청와대 정관주 전 국민소통비서관, 김상률 전 교문수석,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등을 차례로 불러 조사했다. 김 전 실장, 조 장관도 조만간 특검에 불려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여 여부 등에 대한 추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