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미국 기준금리 인상의 기정사실화로 실세금리가 뛰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업계가 예정이율을 줄줄이 낮추고 있다. 예정이율 인하는 통상 보장성 보험료 인상과 연결된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이 저금리 장기화에 따른 자산운용 수익 악화를 앞세워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1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내년 초 예정이율을 평균 0.25%포인트 인하할 예정이다. 보험사는 미래의 보험금 지급을 대비해 고객이 낸 보험료를 적립해 두는데 보험료 납입시점과 보험금 지급시점에는 시차가 발생하게 된다. 이 기간 보험사는 적립된 보험료로 주식이나 채권 투자 등의 자산운용을 할 수 있다. 보험사는 이때 운용에 따라 기대되는 수익을 미리 예상해 일정한 비율로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데 이러한 할인율을 예정이율이라고 한다. 예정이율이 높아지면 보험료는 낮아지고, 예정이율이 낮아지면 보험료는 올라간다.
동부화재와 한화손해보험은 내년 1월 예정이율을 0.25%포인트 내릴 예정이다.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도 내년 1월께 0.25%포인트 정도 예정이율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삼성화재와 농협생명도 예정이율을 각각 0.25%포인트, 0.20%포인트씩 인하했다. 일반적으로 예정이율이 0.25%포인트 내려가면 보험료는 5~10%가량 인상된다. 이에 따라 내년 예정이율 인하 후 보장성보험에 가입하는 고객은 같은 상품이라도 지금보다 더 비싼 보험료를 내야 한다. 보험료가 올라가는 만큼 보험 고객 입장에서는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예정이율 인하 시점이 공교롭게 시장금리 인상 시점과 맞물렸다는 점도 고객들의 불만을 키우는 요인이다. 가뜩이나 지난달 미국 대선 후 트럼플레이션(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재정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에 따라 시장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14일(현지시간)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결정도 확실시 되고 있어 예정이율 인하 명분 자체가 약하다는 게 그 이유다. 이 같은 추세라면 6개월째 동결모드인 한국의 기준금리도 내년 미국 금리의 인상 속도에 따라 상승세로 전환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렇게 되면 예정이율 역시 인하가 아닌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보험업계는 기준금리, 시장금리 등과 연동해 실시간 움직이는 은행권의 금리체계와 달리 후행적으로 결정되는 보험권의 금리체계가 만든 오해라며 억울해 한다. 실제 한은이 지난 6월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한 이후 대출ㆍ예금금리를 곧바로 조정한 은행들과 달리 예정이율을 곧바로 조정한 보험사는 없었다. 예정이율과 기준금리간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예정이율 인하 요인으로 꼽힌다. 1년에 1회 정도 조정되는 예정이율과 달리 기준금리는 최근 3년간 1년에 2회 정도 인하되면서 양측의 격차가 벌어진 상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보험사의 예정이율은 2%대 후반이지만 기준금리는 1.25%다"며 "예정이율이 현재 시장금리와 유사한 수준으로 가는 게 이상적이지만 그렇게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미국금리 인상 예측에도 불구하고 현 금리 수준을 봤을 땐 아직은 전 세계적으로 금리하락기로 보는 게 맞다"며 "보험은 은행 예금과 다르게 초장기 상품이기 때문에 단기요인 반영보다 장기적인 방향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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