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여사. 나는 그녀의 ‘공적’에 대한 존경을 담아 여사로 호칭하고 싶다. 여사의 공적에 대해서는 아직 ‘미개한 국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분의 공적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여사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한국 사회의 질적 발전을 가로 막고 있던 박정희식 개발 독재 체제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그리고 너무도 완벽하게 잘라버렸다는 점이다. 여사는 차은택과 안종범, 그리고 재벌들과 함께 미르재단이니, 문화융성이니 하는 사업을 주창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21세기에 여전히 1970년대식의 정부 ‘전횡’(주도를 넘어) 모델을 재현했고, 그 파산을 보여줬다.
만일 이번과 같은 완벽한 국가적 실패가 생기지 않았다면, 그리고 박근혜정부의 정책적 실패만 논란이 됐다면 박정희 체재는 두고두고 미련과 향수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이제 국민 누구도 이런 미련이 없게 만들었으니 이것이 여사의 첫 번째 공적이다.
둘째, 향후 21세기를 이끌어갈 청소년과 대학생을 집단으로 ‘의식화’ 시킨 공적이다. 여사는 자신뿐 아니라 딸 정유라 양까지 앞세워 ‘희생’시키는 솔선수범도 보였다. 특히 정유라 양이 한국사회의 본질을 갈파한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는 전국의 청소년을 일거에 분기탱천하게 만들었다.
최근까지 우리 청소년과 대학생은 사회구조가 아닌 ‘노오력’이 문제라는 자기암시에 걸려 있었다. 이런 모습은 내가 일본에서 겪은 일본 대학생의 무기력과 유사했다. 1995년 도쿄대에 유학했을 당시 그 유명하다는 도쿄대 법학부 학생에게 ‘미래의 꿈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는 ‘미쯔비시 물산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저 없이 대답했다. 언제부터인가 일본 대학생은 우리 대학생의 모습속에 투영돼 있었다.
지난 주말 촛불집회 때 탑골 공원에서 고등학생 집회를 지켜 보았다. 주입식 교육하에서 반정부 연설을 공부했을 리가 없는 그들의 연설은 전율과 감동 그 자체였다. 여사는 젊은이들의 최면을 단숨에 깨 버린 것이다. 내가 대학 강단에서 오랜 세월 악전고투한 일을 여사는 한 순간에 이뤘다. 교육자로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의 청소년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이들은 앞으로 사회 발전의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할 것이다.
셋째, 막대한 양의 한류 콘텐츠 소재를 제공해 줬다는 점이다. 드라마, 영화, 웹툰, 게임과 같은 한류 콘텐츠는 최근 몇 년간 소재의 고갈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류의 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 최순실 여사 연출의, 40여년에 걸친 파란만장한 국정농단의 역정은 드라마보다 더욱 리얼하고, 영화보다 더욱 박진감 넘치는 소재를 제공해 줬다. 이는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생 역정을 다룬 ‘대망’ 같은 대하소설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최순실 부녀 이야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소재를 제공해 준다. 절대권력자(오다 노부나가?)인 부모의 비극적인 죽음, 후계자(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박해와 배신, 예언과 주술, 권좌로의 복귀(도쿠가와 이에야스?), 비선정치와 가게무샤(그림자 권력), 호스트바가 연결된 암흑세계 등등은 가히 대망을 넘어서는 재미와 스케일을 보여준다.
이처럼 여사가 한국 작가들의 상상력 제약을 일거에 해소시켜 줬다는 점은 크나큰 성과다. 한국 작가와 기획자들은 깊은 반성과 더불어 최 여사의 연출력에 자극 받아 앞으로 엄청난 양의 콘텐츠를 쏟아낼 것이다.
이제 여사의 역사적 과업은 끝났다. 여사의 세 가지 업적은 단절적 혁신 중에서 ‘단절’이다. 혁신은 우리의 몫이다. 이제 새로운 사회 설계를 위해 고민할 때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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