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는 지금 꽃 대궐입니다. 절 마당 안의 커다란 나무들과 돌계단, 갖가지 조형물들이 온통 국화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눈길 가닿는 곳마다 꽃 장엄, 말 그대로 화엄(華嚴)입니다. 언뜻 보아도 수백 수천의 화분이 경내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꽃송이로 세자면 수천 수만일 것 같습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국향이 온몸을 휩싸고 돌며 사람을 반깁니다. 쌍용의 꽃 장식이 눈을 어지럽힙니다. 밤에 보면 더 장관일 것입니다. 황홀하겠지요. 국화 송이 송이가 벌건 대낮에도 꽃 등불입니다.
절에 피어난 꽃들답게 송이마다 사연의 명패들이 붙어있습니다. 어떤 꽃은 가신 이의 명복을 빌고 있고, 어떤 꽃은 부모의 건강이나 자식들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대부분 아들딸들을 위해 비손하는 글입니다.
그중에도 대웅전 앞에 어사화(御賜花)가 꽂힌 사모(紗帽)형태의 장식물이 눈에 띕니다.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쓰던 그것 말입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언저리의 꽃들은 모두 대입수능시험 수험생들을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하나같이 '무인생(戊寅生) 아무개, 대학합격 소원성취'거나 '정축생(丁丑生) 아무개, 대학수능 고득점 합격기원'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순간, 국화꽃 보는 재미가 조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똑같이 생긴 꽃, 천편일률의 문구, 똑같은 희망과 기원….
그런데, 딱 한 사람의 꽃이 달랐습니다. 생년(生年)과 이름만 있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이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니면 아빠엄마는 왜 아무런 기원의 말을 써넣지 않았을까. 이 울타리 안의 모든 꽃들은 예외 없이 수험생들의 것이니 이 아이 역시 수험생일 텐데.'
별의별 상상을 다해보았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은 아닐까. 워낙 실력이 모자라서 합격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그저 요행이나 비는 모양이지. 그도 아니면, 그저 부처님이 굽어 살펴주시기만을 기도하려는 지도 몰라.'
제 아이들이 대학시험을 보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내가 백일기도를 다녔습니다. 일하랴 살림하랴 허둥대면서도 틈만 나면, 정성껏 손을 모으고 절을 하더군요. 어느 날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무얼 빌어?" 그렇게 물으면서도 참 멍청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몰라서 묻느냐거나 별 걸 다 묻는다고 핀잔이나 듣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뜻밖의 답을 했습니다. "점수가 어떻게 나오든지, 대학에 붙든지 떨어지든지… 그것을 우리 아이들 스스로가, 그리고 부모인 우리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요."
아, 그것은 제 아내의 30년 어록(語錄) 중에 가장 빛나는 한마디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결과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순응할 수 있게 해달라는 바람. 물론, 저희 부부가 말처럼 그렇게 달관의 경지를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내의 기도를 아직도 퍽 근사하게 기억하는 까닭은 그것에는 염치(廉恥)라는 것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터무니없는 욕심은 없었다는 것이지요.
문득 '빌다'라는 말의 사전적 풀이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이렇게 나오더군요. '①바라는 바를 이루게 하여달라고 신이나 사람, 사물 따위에 간청하다. ②잘못을 용서하여 달라고 호소하다.' 그리고 또 하나, '남의 물건을 공짜로 달라고 호소하여 얻다'.
국어사전이 '비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①기도나 희망을 이뤄 주십사고 빌려면 ② 먼저 반성부터 할 일이다. 아들딸의 고득점과 합격을 빌기 전에, 자신이 그만한 성과를 기대할만한 부모인가를 먼저 짚어보라. 복(福)과 운(運)을 하늘에 빌자면, 스스로의 부덕(不德)과 불민(不敏)에 대해 먼저 용서를 빌어야 한다."
저 이름만 써놓은 아이의 부모는 그걸 깨달은 사람일 것만 같습니다. 간절히 빌어보려던 꿈이 자신들에게 너무 크고 무거운 것임을 자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말들을 쓸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모든 것을 그저 자신이 믿고 따르는 절대자 앞에 그냥 내려놓고 돌아선 것이었겠지요.
모쪼록, 생년과 이름만 적힌 저 아이가 가진 실력을 다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저 여섯 글자의 기원이 대학입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아무 토를 달지도 않고 과도한 주문도 없는 저 꽃송이가, 백지수표처럼 엄청난 복록(福祿)을 부를 약속이 되면 더욱 좋겠습니다.
여기 오는 길에 사들고 온 시집의 표지를 들여다봅니다. 아주 짧은 시 한편이 그대로 책 제목입니다. "꽃씨 하나/ 얻으려고 일 년/ 그/ 꽃/ 보려고/ 다시 일 년"(김일로). 일 년의 의미가 새삼스러워집니다. 수험생들이 기다려온 일 년과 그 너머에서 기다리는 수많은 일 년들을 생각합니다.
기울어가는 일 년과 다가올 일 년을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무엇을 빌어야 할까, 생각해봅니다.
윤제림 시인
[아시아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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